《‘님의 침묵’ 총체적 분석연구》(서정시학, 2010)

김용직
《‘님의 침묵’ 총체적 분석연구》
(서정시학, 2010)

한용운 연구의 중요한 분절점을 이루어 한용운 연구사에 필수적으로 거론될 저작들이 있다.

한용운에 대한 전기적·문학적 자료를 최초로 종합 정리한 박노준, 인권환의 《한용운 연구》(통문관, 1960), 《님의 침묵》 전편을 선불교의 공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해석하여 시 전체의 사상적 특징을 밝힌 송욱의 《님의 침묵 전편 해설》(과학사, 1974), 한용운 문학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한용운 문학의 위상을 정립한 김재홍의 《한용운문학연구》(일지사, 1982), 《님의 침묵》을 7개의 군으로 나누어 각 시편의 의미를 고찰하고 만해 시의 연작 구조와 표현상의 특성을 분석한 윤재근의 《‘님의 침묵’ 연구》(민족문화사, 1985), 만해 시의 창작 동인이 《십현담주해》에 있다는 전제하에 만해의 자유시와 한시, 시조 전체를 분석한 김광원의 《만해의 시와 십현담주해》(바보새, 2005), 다양한 자료에 의해 만해의 삶을 총체적으로 복원한 김삼웅의 《만해 한용운 평전》(시대의 창, 2006), 만해를 현대인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여 항일의식이나 종교적 구도와는 다른 관점에서 《님의 침묵》 전편을 새롭게 해설한 김종인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나남출판, 2008)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나온 김용직 교수의 《님의 침묵 총체적 분석연구》(서정시학, 2010)는 한용운의 시를 불교의 유심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한국 시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한용운 시의 위상을 온당하게 조망함으로써 기존의 성과를 포괄하면서 또 한 단계 전진한 모습을 보이는 연구사적 성취를 거두었다. 특히 《원본 한용운 시집》(깊은샘, 2009)에서 이미 정본을 확정하고 시어의 기본적 주해를 마무리하였기에 이번 책에서는 만해 시에 대한 사상적·비교문학적·주제적 탐구를 종합적으로 기획하게 된 것이다. 책의 제목인 ‘총체적 분석연구’라는 말에 만해 시 해석본의 결정판을 낸다는 저자의 학문적 의욕이 넘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이 책은 기존의 시집 해설서와는 아주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단순하게 시어나 구절의 뜻을 축자적으로 풀이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각각의 어휘와 구절들이 어떠한 문화 체계에 속해 있는가를 검토하고 문화사적·정신사적 흐름 속에서 의미의 맥락을 분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 결과 《님의 침묵》에 실린 각 시편들이 불교적 신앙시의 측면에서, 반제 저항시의 측면에서, 단순한 애정시의 측면에서 어떠한 위상에 놓이는가를 구명하여 한용운 시의 세 계열이 전개된 양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문학사가로서 한국 근·현대 시문학사를 집대성한 저서를 남긴 김용직 교수는 개별 시편의 해석에 있어서도 한국 현대시의 흐름 속에 한용운의 시가 어떠한 위상에 놓이는가를 함께 고려했다.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불교의 유심철학과 그것의 문학적 표현인 선시와 게송이 한용운의 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한용운의 한시 창작 체험이 자유시 창작에 어떻게 전이되었는가를 고찰하였다. 비교문학적 차원에서 타고르 번역시와 관련이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해당 영어 원시와 번역시를 함께 소개하여 타고르의 시와 한용운의 시가 어떤 점이 유사하고 어떤 점이 다른가를 분명히 서술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 한용운의 독자적 개성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혔다. 그 좋은 예가 되는 것이 〈당신의 편지〉와 타고르의 《채과집(採果集)》 4번 작품, 〈어데라도〉와 타고르의 《신월(新月)》의 종결부, 〈칠석〉과 타고르 《신월》의 〈해안에서〉, 〈오서요〉와 타고르의 《원정(園丁)》 12번 작품, 〈독자에게〉와 타고르 《원정》의 마지막 작품의 비교 분석 작업이다. 이 작품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한용운이 타고르 시의 영향을 어떻게 흡수하여 그것을 자신의 사상으로 용해하면서 시적 독자성으로 재창조하는가를 실증적 분석과 절대비평의 방법으로 명쾌하게 구명하였다.

문학평론가로서 평생을 시 작품의 내밀한 구조 분석에 전념해 온 김용직 교수는 유심철학에 바탕을 둔 한용운의 시, 또는 반제 항일의식에 불타오르는 한용운의 시가 미학적 차원을 획득해 간 양상을 섬세하게 분석하여 사상과 관념이 장미의 향기처럼 느껴지게 되는 문학적 승화의 과정을 서술했다. 그 결과 선불교의 공(空) 사상 일변도로 만해의 시를 일관되게 해석하는 경향이나 만해의 시 전체를 반제 항일의식의 표현으로 도식적으로 해석하는 비평적 오류를 극복하고, 한용운이라는 개성적 자아의 인격과 사상과 문학성이 총체적으로 작용하여 이룩된 언어 구조물로서 개별 시 작품을 읽고 해석해 갔다. 제목에 제시된 ‘총체적’이라는 말은 이러한 의지와 의욕을 내포한 용어이기도 하다.

한용운의 시에 대한 문학적·사상적 우월성이 작품 해석의 기조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한용운의 시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로 일관하지 않고, 이렇다 할 문학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47세의 나이에 현대 자유시 시집 원고를 집필한 원로 승려 시인의 작품상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컨대 〈고적한 밤〉의 “한 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닥은 적은 별에 걸쳤든 님 생각의 金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같은 구절에 대해 “이런 표현은 통속 수사에 그친 느낌이 있어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진다”(72쪽)고 지적한 것이라든가, 〈이별〉의 “時間의 수리바퀴에 이끼가 끼도록”이라는 구절에 대해 “시간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이끼가 비유로 쓰인 것은 적절하지 않다”(94쪽)고 잘라 말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뿐 아니라 같은 작품의 “주검이 밝은 별이라면 이별은 거룩한 太陽이다” 같은 구절에 대해 “만해는 이런 비유가 시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박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95쪽)고 우회적으로 문학적 비판을 가하기도 했고 석가, 모세와 함께 잔다크를 제시한 점에 대해서는 “한용운의 기법에는 다소간 논리의 착시 현상이 내포되어 있다”(97쪽)라고 문학적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길이 막혀〉에 “산넘고 물 넘어”라는 구절이 나오자 “산넘고 물건너”로 썼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용운의 작품에는 때로 이와 같이 언어에 대한 무신경이 출몰하기도 한다”(101쪽)고 비평가적 논평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의 존재〉에 과도한 수사가 반복되는 것을 지적하고는 “한용운의 수사벽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수사를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195쪽)고 비판한다. 〈잠꼬대〉에 대해서는 한용운 시로서는 드물게 남성 화자가 등장하여 대자대비의 차원을 노래한 형이상시이기는 하지만 “기법이 그것을 밑받침하지 못한 작품”(344쪽)이라고 단적으로 논단한다.

그리고 분석자로서 의미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타골의 시(GARDENISTO)를 읽고〉를 해석하면서 “그가 무슨 이유로 이 부분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그 까닭이 잘 포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絶望인 希望의 노래’도 의미의 외표나 내연이 적실하게 잡히지 않는 표현이다.”(397쪽)라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는데, 분명히 파악되지 않는 대목은 애매하게 넘어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학문 풍토와 비교하면 연구자로서의 정직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김용직 교수는 한용운 시에 대한 최종적 해석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은 “그는 인생과 세계, 일상사와 영성의 영역이나 무명(無明), 법공(法空)의 세계를 다루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용운은 우리 현대시사 상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폭넓은 내면 공간을 개척해낸 시인이다.”(387쪽)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종합적 보고는 1920년대 한용운 시의 넓이와 깊이를 나타냄과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그 시적 생명이 윤기 있게 지속되는 연원과 동력을 총체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김용직 교수가 분석한 결과 한용운 시의 흐름은 크게 세 가지 계열로 나뉜다. 불교적 형이상학이나 신앙의 차원을 노래한 작품, 반제 항일의식을 드러낸 작품, 사적인 애정을 노래한 작품 등의 세 계열이다. 이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첫 번째 계열의 작품이요, 그다음이 두 번째 계열, 가장 적은 수를 보이는 것이 세 번째 계열이다. 불교적 신앙시에 속하는 작품을 논의할 때 김용직 교수는 여러 불교 전적과 이론서를 참고하여 매우 깊이 있는 종교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불교신앙적 해석은 추상적 교리에 입각하여 개개의 시어를 공이나 무아의 표상으로 축자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없다. 바로 이 점이 송욱 선생류의 본체론적 획일주의와 구별되는 이 책의 미덕이다.

《님의 침묵》에 수록된 각 시편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대부분 사랑과 그리움의 애정시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불교적 형이상학이나 반제 항일의식을 내포한 작품이 많다. 그러므로 한용운의 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애정시의 어법 속에서 불교 신앙의 측면과 반제 항일의식이 나타난 측면을 찾아내야 하고 그것이 투영된 시구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김용직 교수는 애정시의 이면에 있는 불교적 정신세계를 정확히 찾아내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은유 형태 속에 담겨 있는 항일 저항의지를 도출해 낸다. 때로는 불교적 신앙심 속에 내포되어 있는 반제 항일의식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 결과 얻어진 《님의 침묵》 89편(〈군말〉을 제외하고 〈독자에게〉는 포함시킴)의 시의 주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님의 침묵−불교적 견성의 경지를 노래함.
2. 이별은 미의 창조−불교적 유심철학의 경지에 연결.
3. 알 수 없어요−유심철학에 의거한 세계 인식.
4. 나는 잊고저−단순한 애정시.
5. 가지 마서요−절대의 경지를 지향하는 의지.
6. 고적한 밤−불교의 교리에 바탕을 둔 형이상학 시.
7. 나의 길−불법에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 속에 반제 민족운동의 의식을 내포.
8. 꿈 깨고서−애정시의 문맥 속에 절대의 경지를 지향하는 정신세계를 표현.
9. 예술가−단순 서정시의 바닥에 유심철학의 사상을 담음.
10. 이별−불교적 신앙시.
11. 길이 막혀−불교적 신앙시.
12. 자유정조−은유 형태 속에 민족의식을 드러낸 시.
13. 하나가 되야 주서요−불교적 찬미가의 성격을 지닌 시.
14. 나룻배와 행인−중생제도의 이상을 심상으로 표현.
15. 차라리−불교적 증도가의 하나.
16. 나의 노래−불교적 형이상학을 다룬 시.
17. 당신이 아니더면−육감적 애정시의 내면에 절대 추구의 정신을 표현.
18. 잠 없는 꿈−알레고리 형식으로 유심철학의 비의를 드러냄.
19. 생명−불교적 염원을 담은 시.
20. 사랑의 측량−단순 애정시.
21. 진주−넓은 의미의 신앙시.
22. 슬픔의 삼매−불교적 신앙시.
23. 의심하지 마서요−번뇌를 끊으려는 수도자의 노래.
24. 당신은−불교적 증도가.
25. 행복−절대적 귀의심을 표현.
26. 착인−불교적 신앙시.
27. 밤은 고요하고−불교적 증도가.
28. 비밀−불교적 신앙시.
29. 사랑의 존재−사랑 노래이면서 형이상의 차원을 아울러 개척한 이색적 작품.
30. 꿈과 근심−단순 애정시.
31. 포도주−님을 향해 바치는 헌시.
32. 비방−불교적 증도가.
33. 「?」−절대자에 대한 귀의심.
34. 님의 손길−불교적 증도가.
35. 해당화−단순한 애정시.
36. 당신을 보았읍니다−애정시의 어조에 불교적 정신세계가 비쳐 있으나 반제, 민족의식을 노래한 작품.
37. 비−해탈지견, 견성의 차원을 노래.
38. 복종−중생제도, 보살의 염원을 뼈대로 한 시.
39. 참어 주서요−불교적 증도시.
40. 어늬것이 참이냐−불교적 구도시.
41. 정천한해−단순 애정시.
42. 첫 키스−단순 애정시.
43. 선사의 설법−불교적 증도시.
44. 그를 보내며−실제의 이별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
45. 금강산−상당히 짙은 민족의식을 깔고 있는 시.
46. 님의 얼골−불교적 묘유의 경지를 내용을 한 시.
47. 심은 버들−단순한 애정시.
48. 낙원은 가시덤불에서−불교적 구도시.
49. 참말인가요−도저한 항일 저항의 의지가 내포된 작품.
50. 꽃이 먼저 알아−고향을 그리는 정감.
51. 찬송−찬불가이면서 항일 저항의 의지도 담은 시.
52. 논개의 애인이 되야서 그의 묘에−항일 민족의식의 시.
53. 후회−단순 애정시.
54. 사랑하는 까닭−애정시이면서 불교도의 감각이 진하게 내포.
55. 당신의 편지−애정시이면서 반제의식도 내포.
56. 거짓 이별−불교적 증도가의 흐름 속에 애정시의 무늬도 지님.
57. 꿈이라면−불교적 신앙시.
58. 달을 보며−불교적 증도가.
59. 인과율−애정시의 내면에 불교적 형이상이 담겨 있음.
60. 잠꼬대−불교적 사상시.
61. 계월향에게−항일 저항의지를 담은 시.
62. 만족−불교적 신앙시.
63. 반비례−불교적 형이상시.
64. 눈물−온건한 말투로 제행무상의 철리를 노래.
65. 어데라도−표면상 부드러운 말로 형이상의 차원을 표현.
66. 떠날 때의 님의 얼골−단순 애정시.
67. 최초의 님−불교적 형이상시.
68. 두견새−단순 서정의 노래 행간에 여린 상태로 반제의식이 깔려 있음.
69. 나의 꿈−불교적 형이상시.
70. 우는 때−고독의 체험을 노래.
71. 타골의 시(GARDENISTO)를 읽고−불교적 신앙시.
72. 수의 비밀−불교적 형이상시.
73. 사랑의 불−반제, 저항시.
74. ‘사랑’을 사랑하야요−사랑 시의 저층구조 속에 불교적 정신세계를 함축한 시.
75. 버리지 아니하면−불교적 신앙시.
76. 당신 가신 때−불교적 형이상시.
77. 요술−불교적 형이상시.
78. 당신의 마음−불교적 형이상시.
79. 여름밤이 길어요−경량급 형이상시.
80. 명상−보살행의 경지와 연결된 인간의 애정을 노래했으나 엄격한 증도가는 아님.
81. 칠석−불교적 애정시.
82. 생의 예술−불교적 증도가.
83. 꽃싸움−애정시이면서 불교적 형이상시.
84. 거문고 탈 때−단순 애정시.
85. 오서요−반제, 저항의식이 줄기를 이룬 시.
86. 쾌락−단순 애정시.
87. 고대−불교적 형이상시.
88. 사랑의 끝판−인생의 새 출발을 모색하는 의식.
89. 독자에게−불제자와 민족운동가로서의 자긍심과 아쉬움.

이처럼 김용직 교수는 한용운의 시를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세 가지 측면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양상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한용운의 시를 불교적 관점이나 반제 항일의식의 관점, 혹은 일반적 연애시의 관점으로만 보는 획일주의에서 벗어나 유연하고도 포괄적으로 보는 태도를 갖게 했다. 그것은 일정한 도식에서 벗어나 작품 한 편 한 편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데서 형성된 것이다. 시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의 중층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되는 것은 작품의 치밀한 읽기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러한 89편의 작품 배열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일까? 어떻게 해서 불교적 신앙시의 중간 중간에 단순한 애정시와 반제 저항시가 섞여 들어간 것일까? 《님의 침묵》 전편의 전개에 어떠한 일관성은 없는 것일까? 몇몇 논자들이 해석의 도식성을 무릅쓰고 시집 구성의 전체적 계열성을 거론하였다. 예컨대 김재홍은 《님의 침묵》을 극적 구성을 가진 한 편의 연작시로 보고 이별과 만남을 상대적 축으로 하여 88편의 시를 기승전결의 4단 구성으로 나누어 시상의 변화를 설명하였다. 윤재근은 《님의 침묵》 전편을 7개의 군으로 나누고 각각을 이별, 사랑의 이해, 사랑의 판단, 님의 이해, 만남의 예지(豫知), 사랑의 행위, 만남의 실현으로 항목화하였다. 김광원은 《님의 침묵》 90편을 《십현담주해》 90편의 배치와 일대일로 대응시켜 심인, 조의, 현기, 진이, 연교, 달본, 파환향, 전위, 회기, 일색 등 10개의 군집으로 나누어 각 시편을 해설하였다.

이렇게 계열화하는 것은 일견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개별 작품이 그 작품이 소속된 계열군의 대의에 부합하지 않는 예가 많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작품 배치의 계열화는 개별 작품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무리한 논리화를 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김용직 교수는 개별 시편의 독자성을 존중하여 작품의 의미에 충실한 주제를 내세운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교적 신앙시의 주류적 흐름에 단순 애정시와 반제 저항시가 배치된 맥락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은 필요한 사항이라 생각된다. 《님의 침묵》 전편의 포괄적 의미를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해명도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총체적 분석 연구가 확보한 연구사적 의의의 중후함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이 저서는 불교 이론에 대한 해박한 천착, 한국시사에 대한 엄정한 인식, 작품 분석을 위한 섬세한 통찰력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룩된 21세기 한용운 시 연구의 새로운 보람이다. 앞으로 한용운 시를 연구하는 사람은 이 보탑(寶塔)의 형세와 질량을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이숭원 /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86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평론 등단. 주요 저서로 《영랑을 만나다》 《교과서 시 정본 해설》 《백석을 만나다》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세속의 성전》 《감성의 파문》 《폐허 속의 축복》 등이 있음. 시와시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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