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20세기 전반기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온통 황폐해진 시대였다면, 후반기는 그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고 사람들이 입은 육체적 ․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며 인류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자 여러 분야에서 출현했던 선각자들은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이 가운데 불교계에도 세계적인 스승들이 나타나 불교적 가치와 사상을 바탕으로 피폐해진 인류의 정신세계를 회복시키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그들 가운데 한국불교의 전통과 사상을 세계
티베트의 운명14대 달라이 라마(1935~ )는 정치적 불교도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정치와 불교는 분리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종교적 은둔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가 대승불교 전통에 있다는 점, 최근 300여 년의 티베트 전통에서 달라이 라마의 직위가 종교적, 현세적 지도자였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티베트의 슬픈 운명이었을 것이다.티베트 현대사는 참 슬프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폭압은 일본의 조선 탄압보다 10배, 100배 더 무자비해 보인다. 1950년 10월 중국이 한국
틱낫한(1926~2022)은 1995년, 2003년, 2013년 세 차례 한국을 찾았다. 첫 번째 방문 때는 한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두 번째 방문 때는 그의 저서 《화》가 베스트셀러여서 국내에서 세계적 가수나 영화배우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대중이 운집했고, 카메라 불빛이 쏟아졌다. 그 소란 가운데도 시종일관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는 듯 온화한 표정과 몸짓,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빨리빨리’라는 성급함이 지배하는 한국인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권두언]- 불교의 역할을 다해야 불교다 / 홍사성[특집] 세계를 가르친 현대불교의 스승 10인- 틱낫한_깨어 있는 마음을 세계에 가르친 명상가 / 조현- 달라이 라마_자비와 관용으로 인류평화를 심다 / 허우성- 숭산_불교정신으로 세계일화 추구한 선사 / 최용운- 스즈키 다이세츠_서양에 선의 열풍을 일으키다 / 지혜경- 마하시 사야도_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중흥조 / 정기선- 암베드까르_인도의 병폐, 계급주의를 타파하다 / 박금표- 술락 시바락사_참여불교운동을 이끄는 사회운동가 / 민정희- 아리야라트나_공동체운동으로 세상을 바꾸다
불교는 세상과 불화하기 위해 태어난 종교다. 불교의 가르침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필요하지만, 세상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불교는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불교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불교에 짐 지워진 역사적 사명이다.불교가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자기 좋을 대로만 살려고 한다. 욕심내고 화내고 집착하는 이른바 삼독에 물든 무명의 삶을 원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고, 그렇게 해야 자기 좋을 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살아 있는 한 적당한 욕망과 분노와 집착은 삶의 활력
불교평론 뇌허불교학술상 2022년도 수상자 발표《불교평론》이 제정한 ‘불교평론 뇌허불교학술상’ 2022년도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자 : 유근자(동국대학교 초빙교수)- 수상저서 : 《조선시대 왕실발원 불상의 연구》 • 심사위원 : 위원장 | 이혜숙 위원 | 김성순 김응철 명법 박병기 서재영 이병욱 장성우 허우성 홍사성 시상식• 일시 : 2022년 12월 22일(목) 오후 6시• 장소 : 불교평론 세미나실(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 상금 : 500만 원 불교평론 ▣ 수상자 프로필 - 유근자(동국대학교 초빙교수)▣ 약
1. 근대불교의 영욕 속에서근대 일본불교는 음과 양이 교차한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세워진 신정부에 의한 폐불훼석(廢佛毁釋)으로 불교계는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범교단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재 양성이었다. 불교계는 유럽의 학문 체계를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간다. 고대에 유입된 불교가 중세를 거치면서 일본열도에 토착화를 이뤄갔듯이. 이처럼 일본 불교학이 세계적인 학문의 대열에 들어선 것은 근대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부심 또한 높았지만 오만한 부분도 있었다. 동아시아불교의 중심이 일본임을
1. 들어가며아시아로 전파되어 대표적인 ‘동양 종교’로 여겨지는 불교가 아주 오래전 유럽으로도 전해졌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유럽이 기독교화하면서 불교는 유럽에서 진지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19세기에 들어서서야 불교는 다시 유럽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 불교는 소수였지만 지식인들의 관심사였다. 철학자, 극작가, 문인, 종교인들이 낯선 ‘이방의 종교’를 사뭇 진지한 태도로 바라보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그러나 이후 1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불교는 눈에 띄게 확산되어
소나무 숲의 평상오래된 공원 테니스코트 뒤편 낮은 언덕 위, 밑동이 굵은 늙은 소나무들이 십여 그루 서 있다. 땅에 솔잎이 깔려 있고 송진 냄새가 바람결에 퍼진다. 테니스코트는 2면인데 클럽 회원이 80명을 넘어 주말은 늘 붐빈다. 은퇴자들이나 자유업 종사자들은 평일 낮에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시간을 정해 코트에 나간다.45세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화 · 목요일 오전에 시간이 나서 아버지뻘인 70대 원로들과 공을 친다. 전직이 해군 함장, 고급관리, 교수, 소방서장, 의사,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사람들이다. 모두 구력(球歷)이 30년
만해 한용운의 인적 관계망 그리기세상의 어딘가에 만해도서관이 있다면 서가의 정중앙에 꽂힐 만한 연구서 한 권이 출간되었다. 한용운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나 더 나아가 한국 근현대불교사 연구자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김광식 선생이 펴낸 《만해 한용운의 기억과 계승》은 한용운의 동지와 제자의 면면을 조명하면서 그동안 학계에서 간과해 왔던 한용운의 인적 관계망을 촘촘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한용운이 이들 관계망의 그물코를 쥐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한용운만을 연구의 중심에 두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이 책은 한용운과 동시대
1.인공지능, 가상현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인공지능에 기초한 과학공학기술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 속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기술들의 발전 속도에 힘입어 삶이 더욱 윤택해지리라 기대하며 기뻐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술의 발전 때문에 우리의 존재가 하찮아지게 될 것 같아 두려워지기도 한다. 보일 스님의 저서 《AI 부디즘》은 우리가 황홀해할 것도 그렇다고 불안해할 것도 없다고 말하며, 과학공학기술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중도의 길을 제안한다.《AI 부디즘》은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이하,
1.아날로그의 몰락과 디지털 시대의 개막을 본격적으로 알린 2010년대는 통신망의 진화로 지구촌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거기에 2007년 출시된 스마트 폰의 대중화가 시작되었고, 아날로그 시장은 점차 소멸하여 기존의 PC 중심에서 모바일 웹 서비스 기반의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리얼리즘의 세계관을 조정했던 아날로그 문학은 디지털 시장에 지배되면서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디지털의 파급으로 문학적 풍토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의 존재 방식 또한 다원적으로 재편되었다. 시공간을 넘어 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창작 네트
1. 머리말불교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는다 함은, 불교의 관점에서 불교와의 동이점을 고려하여 불교적 해석을 시도하는 작업이다. 이는 불교라는 거산(巨山)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여 어떻게 등반할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다소 쉽지 않은 등정이다. 고전 자체만 놓고 분석하면 내용 해석은 가능하지만, 사상이 태동한 심층적 사유에까지 이르기는 어렵다. 사상의 지층에 도달하여 강력한 실천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물의 삶과 실존적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윤리교육의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의 지평에
1. 가톨릭 성지화사업을 보는 불교의 시각그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불교와 가톨릭 관계가 최근 심상치 않은 모양새다. 갑자기 불거진 갈등은 아니다. 조짐을 보인 건 천진암 · 주어사 ‘성지화’가 시작이었다. 천진암 · 주어사는 조선 후기 서학(西學)을 연구하던 유학자들을 숨겨주다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는 터다. 하지만 천진암이 아닌 천진암성지로 유명하다. 최근 연구성과에 따르면 천진암 성지화는 가톨릭 신자 남상철(1891~1978)이 1962년 1월 《경향 잡지》에 〈한국천주교의 요람지인 주어사 발견됨〉이란 글을 게재하면서 비롯됐다고
1. 한국사회에서 노인의 위상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다.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는 것의 상대적 개념이고, 늙음은 젊음의 대칭 개념이며, 질병의 고통은 건강의 쇠약으로 형성된 징후다. 노인이란 인생의 이러한 라이프 사이클에서 왕성기를 지나 쇠퇴기 또는 황혼기에 접어든 연령 계층을 말한다.인생의 과정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가 있다면 노인에게도 네 가지 고통이 있다. 그것은 빈곤, 건강의 악화, 소외 그리고 고독이다.첫째, 노인은 빈곤하다. 2020년의 66세 이상 은퇴 연령
포스트코로나 시대, 다람살라 풍경티베트 망명정부가 위치한 다람살라. 히말라야산맥 중턱인 해발 1,500미터 산간의 이 작은 마을은 그동안 전 세계 순례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으로 유명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인적이 끊겼던 이곳이 올해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코로나가 잠시나마 잠잠해지자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사가다와(Saga Dawa)법회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이곳을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 정부가 지난 6월 해외여행객에 대한 입국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 같은 흐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다람살라의 경우 여행 규제
여섯 글자의 화두1993년 가을이었다. 1993년은 국가가 ‘책의 해’로 정한 해였고, 그때 마침 나는 ‘책의 해’ 행사를 주관해야 할 출판문화협의회의 기획 · 홍보담당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으므로 종로 한복판 경복궁 동쪽 문 앞에 자리 잡은 출판협회에 매일 출근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협회 회관 바로 옆에 있는 법련사의 청학(靑鶴)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법정(法頂) 스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시니 시간을 좀 내달라는 말씀이었다.그날 밤, 다 쓰러져가던 납작집 법련사 뒷방에는 법정 스님, 헌화 스님, 청학 스님, 그리고
지구 한쪽 어디에선가 게르니카가 자행되고, 그 야만과 참혹을 누군가는 촬영하여 전시하고 판매하고, 또 누군가는 교양인의 안목으로 전시장을 찾는다. 폭발음 속에서 반쯤 찢긴 치마춤과 끝까지 아이를 놓지 않으려는 한 여인의 손등에 밴 핏발, 멀찍이 나동그라지고 짓밟힌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신발, 숨 몰아쉬면서도 손가락 세 개를 꼿꼿이 펼쳐 든 청년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햇발. 그 처연한 발들이 클로즈업된 작품을 쓱 훑어본 나는, 전시장 2층 레스토랑에 앉아 노을이 잠드는 시간을 뒤적거리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 시집 《하얗게 말려 쓰는
물은 꼭꼭 눌러 담지 않는다흘려보낸다물이 하늘 그릇에 넘쳐 비로 흐른다계곡에서 강으로 바다로 흘려보낸다슬픔도 마음에 넘치면 눈물로 흐른다강에서 바다로 넘친 물이 눈물 속에 넘친다한 방울 눈물 속엔 강이 흐르고바다도 함께 출렁거린다 — 시집 《마법의 문자》(미네르바, 2022) 동시영2003년 계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미래사냥》 《낯선 신을 찾아서》 《십일월의 눈동자》 《비밀의 향기》 외 다수. 한국관광대, 중국 길림 재경대 교수 역임. 동국문학상 등 수상.
저것들은 속이 시꺼먼 이중인격자들이야. 자기들은 잡석이 아니고 오석이라고 으스대지만 보잘것없는 돌일 뿐이야. 처음부터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남의 소리를 듣지 않는 고집불통들이야. 이내 깨어져 모래가 될 형국인데도 끝까지 버티고 입을 앙다문 벙어리들이야.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비정한 인간들이 울려대는 저 단단한 쇳소리를 들어봐. 죽어서 반질거리는 오석에 새겨놓은 공적은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을 거야. 무덤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처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욱거리는 오만한 몽상가들아. — 시집 《꿈꾸는 물》(도훈, 2019) 권달웅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