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 옷을 입은 불교요즘 한국불교의 이슈는 권력에 의한 종교 차별이다. 불교계는 공적 영역에서 진행되는 차별에 맞서 20만의 불자들을 동원하여 항의 집회까지 열었다. 물리적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종교 갈등은 자칫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불자들은 이런 문제와 직면하면 자비와 관용이라는 교리와 정법수호라는 당위가 충돌하는 혼란을 겪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는 “확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 중이나 되어 버릴까” 하는 푸념은 사회관계 속에서 난관이나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주체적으로 극복 못 하고 좌절할 때 나오는 말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교는 비사회적이고 개인의 안심입명이나 추구하는 종교라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전래의 한국
미국 신경심리학자이자 명상지도자인 릭 핸슨 박사와 신경과 의사이며 명상지도자인 리처드 멘디우스 박사가 불교와 뇌과학에 관한 연구들을 고찰하여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이라는 책이 2009년에 발간되어 서구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현재까지도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마음 훈련 특히 불교 수
한국에서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한국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테라와다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법이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 전후해서 초기불교 및 테라와다 불교를 포함한 인도불교의 원전을 배우기 위해서 젊은이들이 인도, 스리랑카, 유럽, 미국, 일본 등지로 유학을 떠
1.최근 몇 년 전부터 한국사회를 풍미하는 키워드는 ‘문화’라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문화’란 단어에 대중이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가 ‘집단 속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질과 이념의 복합체이며, 그것은 환경이란 대상을 극복하고 이룩된 물적 정신적 토대를 총칭하는 개념&
한용운 연구의 중요한 분절점을 이루어 한용운 연구사에 필수적으로 거론될 저작들이 있다. 한용운에 대한 전기적·문학적 자료를 최초로 종합 정리한 박노준, 인권환의 《한용운 연구》(통문관, 1960), 《님의 침묵》 전편을 선불교의 공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해석하여 시 전체의 사상적 특징을 밝힌 송욱의 《님의 침묵 전편 해설》(과학사, 1974),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김용표 교수(이하 저자)의 책 《포스트모던 시대의 불교와 종교교육》(2010, 정우서적)이 출간되었다. 책 제목으로만 보면, 포스트모던 시대라는 표현 때문에 이 책을 불교와 종교 교육의 현대적 적용 정도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좀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불교학의 문제, 종교학적 방법론의 문제, 종교교육적 가치의 문제를
정세근 교수의 《윤회와 반윤회》는 개설서의 성격과 연구서의 성격이 겹쳐진 저술이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1장에서 5장까지는 개설서의 성격을 나타내는 부분이고, 6장이 이 책의 핵심부분이다. 여기서는 국내학계에서 벌어진 윤회와 무아에 관한 논쟁을 소개하고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고 있다. 7장에서는 6장에서 제기되지 않은 문제를 다시 해석하고, ‘한국불교계에 고함’이라는 소제목으로 이 책에서 논증하고자 했던 내용을 기초로 해서 한국불교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이 책의 핵심은 6장에 있다고 하였지만, 그 이전의 도입 부분
고대 인도철학사에서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토대는 여러 학파 간의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서로 간의 논쟁은 한 학파의 정체성을 수립하거나 정통성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심지어 학파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는 역설적으로 학파 간에 서로 영향을 미쳐 상호 보완의 발전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여진다. 대론에 임하는 논사들은 자신이 속한
요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꽤나 이념적이며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고 몇 년 전부터 거리와 매체를 뜨겁게 달구었던 바로 그것은, 사회주의와 좌파에 대립하는 자본주의와 우파의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정체성’이라는 기표는 이미 가치론적 어의
한국불교의 위기를 교주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진단한 저저는 ‘고따마 붓다, 그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역사와 설화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초인적으로 신격화되고 설화를 통해 각색된 화려한 붓다의 모습보다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간적인 붓다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
《티베트 불교철학》은 저자 마츠모토 시로(松本史郞)가 티베트불교를 연구하면서 가지게 된 몇 가지 문제를 해명한 논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서장을 포함해서 모두 11장으로 되어 있다. 서장에서는 일반적인 측면에서 티베트불교사를 설명하고, 나머지 1장에서 10장까지는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논술하고 있다. 각 장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완전히 별개의 주제는
그러니 이제 니까야의 전문가가 된 그가 굳이 책의 제목에 ‘한 권으로 읽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자신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몇 쇄에 거듭한 출간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수녀 신분에서 다시 비구니로 그리고 학승이라는
1. 무상과 죽음 극복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제도권 학문 분류를 따르면 중국불교 전공자이다. 책 보는 것도 훈련이나 관성이 필요한지라 일삼아 하지 않으면 멀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때부턴가 필자는 인도불교 관련 논문 읽기가 무척 힘들다. 전공이라는 벽에 갇혔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때론 이런 벽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1. 《간화정로》의 의의 본 《간화정로》는 월암 스님(현 벽송선원장)이 그동안 연마했던 수행과 학업의 결과물로 2006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햇수로는 벌써 4년째 되는 동안 간화선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며 실참을 하는 사람에게 많은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음은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사상의 탐구 및 실수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진행하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08년이 저물고 2009년의 해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9로 끝나는 해인 내년은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9라는 숫자 자체를 길하게 여기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관념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어에서 '九'가 '久'와 같이 '지우'라고 읽히기 때문에 9는 중국인에게 있어
1. 인연 그래 그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대승경전과 禪』(민족사, 2002)이라는 내 책이 있다. 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금강경』을 비롯한 대승경전 안에 이미 중국에서 완성된 선불교의 사상적 입각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추적한 글이다. 그 도입부로서 “과연 대승불교는 어떻게 일어났던가” 라는 점을 조금은 언급할
올해(2008) 설 연휴는 유난히 긴 느낌이다. 그 끝자락에 《空(공)입문》을 읽었다. 이 책 뒤에 정리된 참고문헌에는, 저자 가지야마 유이치(1925~2004) 선생이 쓴 《반야경》 관련 책들의 목록이 제시되어 있다. 그렇게 원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축적해온 노대가(老大家)가, 반야사상의 위대한 조사 용수(龍樹, 나가르쥬나, 150~250년 경)의
저자를 위한 책과 독자를 위한 책 언제부터인지, 나는 책을 읽는 재미를 잃었다. 한 권을 소화하는 데도 며칠, 아니 몇 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이 흐르기도 한다. 매 학기 초면 읽을 거라고 책을 수십 권씩 사고, 그렇게 사둔 책이 일 년 내내 서고에 꽂혀 있는 경우도 태반이다. 내가 책을 읽는 재미를 잃은 것은 물론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
1. 들어가면서 ‘근대’라고 하는 말은 왠지 낯설다, 적어도 ‘불교’와 관련지어 보는 한에서는 말이다. 우리에게 있어 불교와 ‘근대’ 혹은 ‘근대화’는 그만큼 동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왜일까? 근대 혹은 근대화라는 말은 상당 부분 ‘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