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민법제의 연혁많은 경우 법률은 특정 사회공동체가 이미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 논의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반면 아직 사회공동체 전반의 주목을 받고 있는 주제가 아님에도 해당 주제에 관한 일부 전문가들의 관심과 열정 덕분에 법률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다. 전자가 마치 몸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작아진 옷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되자 비로소 몸에 맞는 잘 어울리는 옷을 장만하는 격이라면, 후자는 몸이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미리 옷을 마련해두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의 난민법제는 후자
1. 머리말무명(無明)의 그림자를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늘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을 과장하거나 비하하는 방향으로 인식하면서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표출하곤 하는데, 그런 점에서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자아정체성을 본격적으로 형성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열등감과 우월감의 교차를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외모나 지능, 힘 같은 요소들을 기준으로 삼아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일어나는 이러한 감정의 교차는 그들을 불안하고 격정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 거기에 그
요즘 지구촌은 말 그대로 화택(火宅)이다.기후 온난화로 인해서 ‘불타는 지구’가 되고 있다는 걱정부터 여러 나라에서의 지진과 전쟁의 화염은 ‘불난 집’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젊은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 나갔다가 압사당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또 한편에서는 폭우와 화재로 거처를 잃은 이웃들의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다 밤낮없이 으르렁대는 정치권의 싸움질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세간사란 본래 변화무쌍하고 괴로운 법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는 하지만, 매스컴이 전하는 내용들에 너무 충
《석씨요람(釋氏要覽)》과의 만남《석씨요람》과의 만남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의 역주자인 김순미 박사가 그의 은사인 정경주 교수와 번역된 원고를 가지고 윤문하고 있다며, 평소 불교에 관심이 있는 필자에게 동참 제의를 해왔다. 이에 중국의 부세평(富世平)이 펴낸 《석씨요람교주》(북경: 중화서국, 2014)를 들고 함께 작업하게 되면서였다.이 책은 11세기 초(1020년경)에 사자사문(賜紫沙門) 석도성(釋道誠)이 편찬한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간행되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불가에서 꾸준히 읽어온 책이다. 더욱이 일본의 경
✽불교소설은 불교문학 진흥과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을 위해 ‘재단법인 보덕학회’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 월즈라는 선배가 있다. 구라는 심하지 않은데 뻥이 있다.구라와 뻥의 차이도 그가 말한 거였다. 서사가 있으면 구라, 없으면 뻥.그는 자기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고 했다. 그게 열리면 바람과 물의 저항을 적게 받아 뭍에서든 바다에서든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술 먹고 자신이 행여 쓰러지는 응급상황이 생기더라도, 불편하게 둘러업거나 그러지 말고 구멍에 장대를 넣어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을지병원으로 달려가
1.선가(禪家)에는 저마다 독특한 가풍이 전하여 온다.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이 임제할(臨濟喝)과 덕산방(德山棒)이다. 《선학사전(禪學辭典)》에서 ‘할(喝)’을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대(唐代) 이후 선림에서 사용된 규성(叫聲, 외치는 소리)으로, 질타(叱咤)의 뜻을 나타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50여 년 동안 불사의 현장에서 뛰었고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 온 작가 겸 교육자였던 손연칠 화백이 고희를 넘겨 ‘시대정신’이란 할(喝)을 불교계와 한국 화단(畫壇)에 내질렀다. 손연칠 · 손문일✽ 지음, 《불교미술의
이찬수 교수의 책 《메이지의 그늘》을 읽었다. 부제는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다. 종교학을 전공한 저자가 ‘평화학’을 시도하면서 일본이 근현대사에서 보여준 보수 정치가 어떻게 ‘영혼의 정치’와 연결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 이찬수✽는 〈영혼의 정치학: 천황제와 신종교의 접점〉(2013), 〈천황제, 군국주의, 그리고 선(禪): 스즈키 다이세츠로 선을 되묻기〉(2021) 등의 논문에서도 잘 보여주었듯이, 종교학자로서 출발한 일본 연구의 성과를 메이지 시대에 나타나는 부정적 국가 이미지에 대하여 ‘영혼의 정치’라는
승조(僧肇)의 《조론》은 중국불교뿐만 아니라 중국 사상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저술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 중국 전통사상과 불교의 사상을 가장 완벽하게 융섭(融攝)한 최초의 저술을 꼽는다면 단연 《조론》을 떠올릴 정도로 중요한 저술이다. 이처럼 《조론》이 중요한 저술로 평가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중국불교는 동한(東漢) 시기에 본격적인 역경(譯經)이 시작되면서 안세고(安世高)의 선수학(禪數學)이 당시의 신선방술과 결합하여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
* 이 글은 지난 4월 21일 개최된 동방문화대학원대학 불교문예연구소 주최의 ‘탈종교 시대와 불교의 대중화’ 주제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을 필자가 정리한 것이다. 1. 문제 제기: ‘출가’와 ‘재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나“초기불교에서 석존은 출가자와 재가자 누구든 윤회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아라한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아비달마불교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기는 했지만, 대승불교에 와서는 모든 중생은 성불할 수 있다는 점으로 완전 정리가 되었다. 《유마경》의 유마거사나 《승만경》의 승만부인은 재가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근대불교학의 도입과 대승비불설일본의 대승비불설의 문제는 불교가 아카데미 내에서 근대적인 학문으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불교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으로 문헌적 역사적인 연구가 도입됨에 따른 것이다. 불교에 대한 전통적인 수학은 수행과 신앙을 위한 불교 성전에 관한 훈고학적인 연구였다. 대승불교에 대한 비불설은 에도시대에 최초로 토미나가 나카모토(富永仲基)의 《출정후어(出定後語)》에서 제기되었지만, 당시의 풍조 속에서는 단지 배불논서(排佛論書)로 수용되는 것에 그쳤다. 나카모토는 ‘가상(加上)’이
1. 서구인 최초의 공식 불교 신자이 글은 19세기 후반,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에서 출발하여 불교로 개종한 후, 남아시아에서 불교 연구와 불교 근대화 운동에 헌신한 헨리 스틸 올코트(Henry Steel Olcott, 1832~1907)의 삶과 사상을 ‘종교불학(宗敎佛學, Buddhology of Religions)’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의 생애는 동서문화의 만남과 변화의 경계선에 있던 한 서구 지성인이 자신의 속한 전통의 테두리를 벗어나 보편적인 진리 지평을 향해 걸어 나간 구도자의 모습을
1.들어가는 말몽테스키외는 18세기 그의 조국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친 정치사상가, 법률가, 역사가, 사회경제학자였다. 그는 1689년 1월 18일 프랑스 남부 보르도 인근의 드 라 브레드(De la Brede)성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1755년 2월 10일 파리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전체 이름 “Charles Louis Joseph de Secondat, Bare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에서 잘 나타나듯이 귀족 출신인 그는 백부로부터 보르도의 고등법원장을 물려받아 10여 년
1. 여는 글얼마 전 발표된 한 종교인식조사(주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불교의 신뢰도는 가톨릭, 개신교 다음 3위로 조사되었다. 불교의 신뢰도가 기독교보다 낮은 결과는 이번 조사가 처음이다. 이 결과는 이제까지의 종교인식조사들이 보여준 일관된 경향성, 즉 불교는 이웃종교에 비해 사회적 활동은 적지만 호감도는 높은 종교이며 개신교보다는 높은 신뢰도를 보인다는 경향성을 벗어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불교와 가톨릭은 국가의 방역 정책에 협조하였고, 반면에 개신교(보수 개신교 중심)는 그렇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일부는 헌법
* 이 글은 ‘챗gpt와 불교의 미래’를 주제로 지난 3월 23일 개최된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발표한 내용을 필자가 정리 보완한 것이다. 1. 서론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사물 인식 능력과 언어 능력에서 압도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인공지능은 이제 거대 생성형 AI로 인류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 생성형 AI 기술은 기존의 검색 위주의 인터넷 환경에 일대 변혁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심각한 위협과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너무나 빠른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서, 세상
불교 입문내가 태어나서 자란 시대는 전반적으로 향학열이 높았다. 그때 유행한 노래 중 하나가 “젊은이는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룩하기가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보내지 말라(少年은 易老하고 學難成하니 一寸光陰이 不可輕이라)”는 내용이었다. 나의 부모님도 열성적이셨다. 6 · 25 때 서울에서 낙향하여 시골에 사시던 부모님은 중학교부터는 나를 서울로 유학(?) 보내셨다. 나도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따라 가끔 절에 갔지만, 의식적으로 종교를 불교로 선택한 건 체
정찬주의 《아소까대왕》(전 3권)이 출간되었다. 2천2백여 년 전 인도 전역을 통일한 정복왕 아소까가 피의 살육을 멈추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는 과정을 주목한 작품이다. 이것은 한국문학인가 인도문학인가. 불교문학인가 보편문학인가. 역사인가 허구인가. 이런 질문 앞에 서면 답하기 어렵다. 다양한 성격이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소재와 형식과 지평이 풍요로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정찬주 작가의 이 작품은 한국문학인 동시에 세계문학이다. 세계인 누구나 읽어도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다. 특수한 문화권의 이야기
‐몽골 호스타이 국립공원 인상 고개 들고 나대지 않는다 햇볕 좋으면 하늘 쳐다보고비 오면 목 축일 뿐 잘난 척할 일, 부끄러울 일 없다 비바람 멎었으니말들에게 뜯어 먹힐 시간 내일은 거름으로 돌아오리 — 시집 《샹그릴라를 찾아서》(책만드는집. 2022) 홍사성 / 2007년 《시와 시학》 등단. 시집 《내년에 사는 법》 《고마운 아침》 《터널을 지나며》 등. 홍사성2007년 《시와 시학》 등단. 시집 《내년에 사는 법》 《고마운 아침》 《터널을 지나며》 등.
현관에 놓인 빛바랜 검은 구두처음 만났을 때발에 맞지 않아 뒤꿈치 까이며 신었지만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졌을 때 우리는비포장 길도 무섭지 않았다꽃길이었다가 비가 스며들었다가앞만 보고 걷다 돌부리에 걸린 날땀내 나는 웃음으로 걸어함께 써내려온 일기장닳아버린 뒤축만큼 둥글게 채워져해지고 주름져도 버릴 수 없는낡은 구두 — 시집 《사람의 가슴엔 바다가 산다》(책펴냄열린시, 2022) 최난경부산에서 태어나 양산에서 성장. 2015년 《문예운동》으로 등단. 경남작가회의 회원.
떨어지는 눈물/ 은하수에 이른다면 은하수로 흘러흘러/ 너에게 간다면 너에게 이르러/ 별이 된다면 나 또 산산이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 파르르 먼지 하나/ 너에게 간다면 가서 쌓인 먼지/ 보석이 된다면 네 가슴에 숨어/ 천년을 산다면 너의 품에 안겨/ 하루를 잔다면 — 시집 《울다 남은 눈물》(황금알, 2023) 김원옥《정신과 표현》으로 등단. 시집 《바다의 비망록》 《시간과의 동행》 에세이집 《먼 데서 오는 여인》이 있다.
못생긴 모과 하나 방안 가득눈물 같은 향을 내더니썩어가며 더욱 깊어지누나 암꽃처럼 피어나는 반점 그대,누워서도 성한 우리를 걱정하시더니 — 시집 《아름다운 이름 하나》(문학세계사, 2021) 김용화1993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아버지는 힘이 세다》 《감꽃 피는 마을》 《비내리는 소래포구에서》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 등. 시와시학 동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