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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는 가시를 떼내고 화살나무는 화살촉을 떼내고 매발톱풀은 발톱을 떼내고 톱풀은 톱날을 떼내고산 식구들이입 코 눈 귀를 떼내고모두 숨을 멈추고 생각도 멈추고 ‘나’를 벗고 있네나도 한 꺼풀 허물 벗으려고 산을 향해 면벽하고 앉아 보지만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서나를 떼낼 수가 없네— 시집 《사람 냄새 그리운 꽃그늘에서》(글나무, 2023) 김순일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첫 시집 《서산사투리》를 비롯 《함께 웃 어야 고추가 잘 자란다》 《바보네집 호박꽃》 등 15권 상재. 충남문학상, 한성기문학상 등 수상. 현재 서산문학
내 마음의 시
김순일
2023.10.3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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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덩이도 우는구나 새벽마다 우는구나울고 싶은 사람 대신 울 수 없는 사람 대신한 방울 눈물 없이도 온 세상 다 울리는구나— 시조집 《고요의 헛간》(목언예원, 2023) 민병도1976년 〈한국일보〉 시조 등단. 시조집 《설잠의 버들피리》 《갈 수 없는 고독》 《무상의 집》 《부록의 시간》 《일어서는 풀》 등 25권 상재. 정운시 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재 《시조21》 발행인.
내 마음의 시
민병도
2023.10.3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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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헛것일 줄 알기까지한 세월이 지났구나밝았던 얼굴, 낭랑했던 음성눈부셨던 둘레에헛것 가득 찬 줄 알기까지한평생이 걸렸구나벼락, 천둥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젖은 신발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모래도 헛것이고, 티끌도 헛것이고흰 살결도, 검은 눈물도. 꽃도, 안개도절집도, 성당도, 학교도, 국가도아직 오지 않은 천년도모두가 헛것이었구나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시집 《건들거리네》(동학사, 2023) 조창환 /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나비와 은하》 《저 눈빛, 헛것을 만 난》 《허공으로의 도약》 《
내 마음의 시
조창환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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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 을 먹고 풀들이 자란다. 풀을 먹 고 소들이 자라고 소의 젖을 먹 고 사람의 아이들이 자란다. 지 리산 자락 산청은 소를 먹이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내가 태어나 고 자란 곳이다. 맨 처음 어머니 에게 글자를 배우고, 서울에서 공부하던 삼촌 서랍에서 소월의 〈초혼〉을 뭔지 모르고 읽고 외 운 곳이다.첫 경험이란 그렇듯 외우려 하 지 않아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 린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문 익점이 붓두껍 속에 무명씨 세 알을 숨겨와서 처음 이 땅에 심 었던 밭이 거기 있다. 그 자리에 시비 제막식을 하던
사색과 성찰
이경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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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창이 하나 있다. 거 실 옆에 싱크대가 자리 잡고 그 싱크대 바로 위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창 하나가 있다. 나는 그 창을 내려다보며 그릇을 씻고 채 소를 다듬고 도마질을 한다. 시 선은 늘 창밖으로 향해 있다. 시 선이 창밖으로 나가 있어 손으로 하는 일이 가끔 실패를 볼 때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그래도 나는 창을 본다. 설거 지를 끝내고도 나는 창 앞에 서 있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천천히 마시면서 나무들과 인사도 하고 아 봄이구나 계절의 변화도 여기 서 만난다. 핸드폰을 받는 곳도 여기다. 친구들의 전화 끝에 나
사색과 성찰
신달자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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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옌스와 한스 큉이 지은 《문학과 종교》라는 책의 첫머리 에 보면 17세기에 시작된 근대의 특징을 과학과 기술, 그리고 과 학과 기술에 의해 생산된 산업 을 들고 있다. 또한 중세 로마 가 톨릭 교회가 곧 교황이고, 종교 개혁에 와서는 ‘하느님의 말씀’ 이 핵심어였다면 근대에 이르러 서는 합리성, 이치, 이성이 핵심 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학과 산업을 통해 촉진된 합리 주의화된 근대에서 무엇보다 결 핍된 것은 파스칼이 포괄적으로 ‘가슴’이라고 부른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다시 말해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합리
사색과 성찰
불교평론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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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개정판 《 이용악 전 집》을 냈다. 2014년 이용악 탄 생 100주년을 맞아 이경수 평론 가, 이현승 시인과 함께 2년여의 작업 끝에 《이용악 전집》을 펴낸 것이 2015년 1월이니, 8년 반 만 에 개정판을 낸 것이다(이 개정 판은 이경수 평론가의 노고에 힘 입은 바 크다).전집을 낸 이후 여러 선배와 동료 연구자들의 도움으로 미발 굴 시와 산문들을 새로이 찾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시 7편(〈거 울 속에서〉 〈북으로 간다〉 〈おらが天ゆゑ(나의 하늘이기에)〉 〈물 러가는 벽〉 〈새로운 풍경〉 〈불붙 는 생각〉 〈당 중앙
사색과 성찰
곽효환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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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제민천 길을 따 라가고 있었다. 내가 사는 금학 동 아파트에서 시내 쪽으로 가려 면 이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른바 외통수 길인데 이 길은 금강으로 흘러가는 제민천을 따 라서 나 있어 비스듬히 아래로 기울은 길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 쪽으로 가려면 가볍게 페달을 밟기만 해도 자전거가 굴 러간다. 저절로 기분이 가벼워지 고 상쾌해진다.그런데 요즘 며칠 나는 심히 앓았다. 아니 혼돈된 삶을 살았다.내내 잘하던 문학 강연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리가 풀 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고 입속 에서 말이 잘 나
사색과 성찰
나태주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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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이 나의 어 머니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고려 대장경의 한 구절이 내 시심( 詩心)에 깊이 들어온 적이 있다. 그 때부터 마음속에 박혀 있던 가 시가 뽑히고 생각까지 바뀌게 되 었다. 마치 불법(佛法)이 ‘바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에 대한 각성이 생겼던 것이다.세상에는 너무 기막혀서 절대 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 참혹 한 일들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풀이된 두어 권의 경전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처럼 부처님이 설한 교법은 마음에 즐거움을 주고 고 통을 빼주는 것이며 괴로움의
사색과 성찰
천양희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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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일생에 몇 번의 전 환기가 오게 되는데 나의 경우 20대 말과 40대 초반이 그러하 였다. 그리고 올해 예순 중반에 내게 또 한 번 생의 변곡점이 찾 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 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후의 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 다. 이것은 내 뜻과 무관하게 도 래한 것으로서 우연으로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 우 리는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볼 수 없다. 개체의 운명을 좌우하 는 실재를 따를 도리밖에는 없 는 것이다. 나는 미래를 모른다.산등성이에서 태어나 사람의 몸을 타지 않은 최초의 바람과 풋풋하
사색과 성찰
이재무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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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 아내와 함께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7박 9일 여정 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의 여러 유서 깊은 도시 들을 둘러보았다. 프랑크푸르트, 로텐부르크, 뮌헨, 밤베르크, 잘 츠부르크, 빈, 부다페스트, 브르 노, 프라하, 카를로비 바리……. 이 도시들은 멀리로는 중세에까 지 거슬러 오르는 각종 건축과 거리를 오늘이라는 시간 위에 고스란히 펼쳐놓고 있었다. 비 록 주마간산이었지만 그 풍경 들 속에 스며든 21세기 현지인 들 삶의 모습 또한 매우 인상적 이었다.들뜬 기색이라곤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칼럼
윤효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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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한국불교 1,700년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전래 · 발전기(전래-신라 중대), 유지·침체기(신라 하대-고려 시대), 쇠퇴기(조선시대-승니 도성출입금지 해제), 그리고 회복기(승니 도성출입금지 해제-현재)로 나눌 수 있다.한국불교의 역사에서 흥성(興盛)의 시대로 볼 수 있는 시기는 전래 · 발전기와 유지기로 삼국시대에서 고려 중기까지이다. 반면에 쇠퇴의 시대는 침체기와 쇠퇴기로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이다.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는 불교의 국가적 수용과 더불어 사회 적 실천이 뛰어났다. 많은 승려의 교학 연구에 힘입어 중국
불교 흥망성쇠
김경집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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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인도불교사의 전개는 4단계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는데, 그것은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이다. 부파불교 시대에 대중부 와 상좌부로 나누어졌는데, 이 상좌부가 현재 남방 상좌부불교 곧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불교의 근원을 이룬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대승불교가 등장하여 동아시아 곧 중국, 한국, 일 본, 베트남으로 전파되었다. 이어서 밀교가 등장하였는데, 이 밀교 는 히말라야산맥의 여러 나라, 곧 티베트, 네팔, 부탄 등으로 전파 되었다. 현재 불교는 미국과 서유럽에서 지식인의 종교로서 자리매
불교 흥망성쇠
이병욱
2023.10.3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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