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1. 포스트휴먼 시대 -‘동물로의 전환(animal turn)’이 왔다그동안 분야별로 혹은 국지적으로 발전되어 오던 과학기술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서로의 기술을 융복합하는 가운데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획기적인 발전이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응용 가능성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 실로 무궁무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연 지능을 완전히 초월하는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의 도래
1. 들어가는 말 1967년 12월 3일 세계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흉부외과 의사 크리스천 네이틀링 버나드(Christiaan Neethling Barnard)는 인간의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 수술에는 무려 30명의 의료진이 참가했으며 수술 시간만 9시간이 걸렸다. 인공심폐기의 발명에 힘입어 1950년대에 신장이식, 1960년대에는 간이식에 성공한 이후, 개심(開心) 수술의 시대를 연 것이다. 뇌사 이전의 심장 정지를 죽음으로 확정했던 시기, 심장이식 수술은 자신의 심장을 떼어 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상징적인
보1. 시작하며인간의 몸은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그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며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귀착된다. 그 질문은 다시 인간과 기계는 향후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가, 혹은 맺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다시 확장될 수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혹은 4차 혁명, 4차 인간, AI 시대 등등 과학기술의 비약적 혁신을 시대에 담아내기 위한 표현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 명칭의 적실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전과는 확연히
1. 머리말20세기 후반 생명공학, 유전공학, 인지과학, 정보통신 기술, 컴퓨터공학, 나노기술 등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비인간 주체가 사회적 영역으로 급속히 부상하였다. 인공지능, 로봇, 복제된 생명 등의 존재는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끌어냈다. 기계인간에게 인류의 생존을 위협받는 내용을 담은 〈터미네이터〉나 〈배틀스타 갤럭티카〉 같은 SF영화는 막연하게 떠오르는 포스트휴먼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수단을 제공하였고, 자율주행 자동차나 이세돌 기사를 압도한 알파고의 등장이 회자되면서 포스트휴먼은 현실이
중국불교의 역사에서 대만불교가 명확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청대 말로서, 대만을 거점으로 반청운동을 전개하려고 했던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의 통치 이후라고 볼 수 있다. 대만불교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일본강점기에 이뤄진 일본불교화 시기, 국민당 정부와 대만 거주민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던 계엄 시기, 1980년대 중반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이뤄지던 본토화와 주체화 시기, 그리고 이후의 국제화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오늘날 대만불교의 발전을 보면, 1980년대까지 계엄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대학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
들어가는 말대만불교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출가 수행자와 계를 지키지 않는 수행자들을 경책하고 수행자만큼 계를 소중히 하는 재가 신도들이다. 식당에서조차 수행자가 육식을 하려 하면 아예 음식을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대만불교에서 계를 지키는 ‘지계(持戒)’는 불교도들에게 목숨과도 같다. 깨달으면 계율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한국 불교도들과 출 · 재가자의 경계가 아예 없는 일본불교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많은 대중은 일본불교는 계율이 없고, 한국불교는 수계
1. 들어가는 말몇 년 전에 우연한 계기로 대만 종교계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에게 대만 답사를 권했던 사람이 대만불교가 대단하다고 하면서 한번 가자고 하였고, 나는 속는 셈 치고 그 답사에 참여하였다. 답사하는 동안 나는 대만불교를 더 일찍 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대만에 답사하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가지 못하였다.대만불교는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를 기반하는 것이기에 한국불교와 공통요소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도 한국불교보다 더 진전된 현대불교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대만불교의 특징적 모
1. 들어가는 말 대만은 얼핏 보기에 우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르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다. 단지 중국 지역의 광대함과 각 지역의 차이를 고려한다 해도 대만은 나름의 특색이 매우 많은 지역이다. 모든 지역이 그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대만은 매우 독특한 지역이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동아시아 다른 지역보다 좀 더 독특한 지역으로 여긴다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지역과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모든 지역의 특색은 대부분 지리적 위치 및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1. 서언대만불교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연구 자료는 1919년 일본 대만총독부에서 실시한 종교조사, 1996년 발간된 《대만불교백년사지연구(臺灣佛敎百年史之硏究)》 등이 토대가 되고 있다. 엄종정(嚴正宗) 저 《중독대만불교(重讀臺灣佛敎 : 戰後臺灣佛敎(正編))》(2004), 하면산(何綿山) 저 《대만불교(臺灣佛敎)》(2010) 등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불광연구원 편저 《대만불교의 5가지 성공 코드》(2012) 등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불광연구원에서 간행했던 《전법학 연구》에서 대만불교에 대하여 다양한 주제와 관점에서 집
1. 서론포스트휴먼이라 하면 대개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 자율주행차, 군사화된 드론 들을 떠올린다. 디지털 기술로 만든 이들이 주체가 되고 인간은 배제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산업의 이익을 갈구하는 기술 찬양론자이든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기술 공포론자들이든 우리에게 억지로 구겨 넣은 상상력에 불과하다. 오히려 인간 대다수를 배제하려는 거짓이다. 이 글은 가부장제 문명 속에서 오랜 세월 존재하지 않았던 여자가, 여성적 원리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포스트휴먼 주체가 되어 인신세(人新世)인 이 시대를 구제하는가에 관한 정치철학이자 윤리학에 관
1. 코로나 팬데믹, 생명의 이중성을 폭로하다 “먼저 공간의 엄격한 분할, 곧 그 도시와 그 지대의 봉쇄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그것을 위반하면 사형에 처했고 헤매는 동물들은 사살되었다. 나아가 그 도시를 명확하게 다른 지구로 세분하여 그곳에서는 1인의 행정관이 권력을 확립했다. 각 길거리는 1인의 담당자의 지배하에 놓였고, 그는 거리를 감시한다. 만일 담당자가 그곳을 떠나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지정된 날에 각자는 집 안에 머물라는 명령을 받았고, 외출이 금지되었으며 위반하면 사형을 당했다. (…) 그
1. 들어가며대만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순수 불교의 모습과 도교 내지 토착 종교 등과 융합된 복합종교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불교 신자 중에서도 다른 토착신앙을 함께 믿는 경우가 많고, 전통 신앙이나 무속을 믿는 이들도 불교 사찰에 와서 재를 올리거나 기도회에 참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683년에서 1895년까지 청의 치하에 있는 동안 대만불교는 민간의 토착신앙과 혼합되어 민속불교 신앙의 형태로 나타났다. 현재는 불교계의 신앙 대상이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약 30여 제불보살이 섞여 있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들어가는 글다른 서양 국가와 비교하면 호주는 아시아에서 비교적 가까운 나라다. 물론 남반구에 위치하여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심적으로 그리 가깝다고 볼 순 없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깝다고 한다. 특히 불교 인구가 2016년 18.1%로 보고된 크리스마스섬의 경우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350km 거리의 인도양에 위치하여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호주 땅이다. 이런 지리적 접근성은 아시아인의 이주나 교역을 일찍부터 용이하게 하여 호주의 주류 백인들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그 결과 1901년에 ‘백인 호주 정책(White Australia
불교의 기원과 교설적 발전은 분명 인도 및 아시아 등지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현재 불교의 영향력은 더 이상 지역적 구분으로 범위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종교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독일에 불교가 처음 알려진 것은 약 150년 전의 일이다. 아시아에서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불교가 전래된 북미나 호주 등의 지역과는 다르게, 독일을 포함한 유럽 지역의 불교는 학자들의 지적 관심에 의해 자발적으로 소개되었다.지난 반세기 동안 불교는 종교로서 유럽에서 괄목할 만한 가시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 가시적 성장이란 다양한 불교 종파
"(가톨릭) 교회의 맏딸인 프랑스는 불교의 나라가 될 수 없다."— 에릭 롬믈뤼에르"프랑스인에게 ‘불교’라는 단어는 무엇보다도 티베트불교를 연상시킨다."— 베르나르 포르 1. 부말(浮沫)에 불과한 프랑스에서의 불교 붐두 제사(題詞)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불교는 프랑스인들에게 여전히 이국(異國)의 문화에 해당하며, 기독교와 조화로울 수 없는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는 예나 지금이나 ‘신비적인(mystique)’ ‘불가사의한(ésotérique)’ ‘비논리적인(illogique)’이라는 수식어가 거의 자동으로 따
1. 영국과 불교의 만남영국은 식민지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만나게 된다. 1500년대 초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서구의 스리랑카 식민화가 시작되었고, 1600년대 중반부터 네덜란드가 스리랑카 남부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1796년부터 영국이 스리랑카를 전역을 장악하면서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1815년 캔디협정을 통해 스리랑카를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 당시 식민지 스리랑카의 관료들은 스리랑카불교를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종교로 여겼고, 개신교 전파를 통해 스리랑카를 기독교화하여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기반을
1. 시작하며: ‘빨간 머리 앤’의 고장캐나다 동부 끝에 자리한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州)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의 배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여름이 되면 주도(州都)인 샬럿타운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활기차게 북적이는데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10년대 후반부터 대만 관광객 수가 갑자기 증가했다는 것이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 관광청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에 연간 58명이었던 대만 관광객이 2010년대 후반에는 3,065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관광지에서
1. 들어가는 말“함께 일어서기 위해 함께 참선한다(Sitting Together So We Can Stand Together).”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는 영어의 ‘참선하다/앉다(to sit)’와 ‘대항하다/일어서다(to stand)’라는 표현의 대조의 맛을 살릴 수는 없지만, 이 표현은 미국불교 현주소의 주요한 모습을 간결하게 보여준다.종교와 철학은 인간 삶과 존재에 대한 의미와 궁극적인 진리에 관한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한다고들 한다. ‘궁극적’이라는 말은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서 ‘보편적’이라는 개념으로도 이해되어 왔다. 삶의
1. “집이 불타고 있다.” 2019년 다보스 포럼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호소하며 세계 정치 경제 지도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겪으며 조르조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재인용함으로써 그것은 기후변화를 넘어 이 시대의 총체적인 위기를 상징하는 비유가 되었다.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집이 불타고 있을 때처럼 행동하라는 툰베리의 호소에 아감벤은 불타는 집에서 평상시처럼 행동하며 인간다운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지젝은
-불교에서 바라본 프롬의 소외 이론 1. 서론: 소외의 일반적 개념 현대산업사회에서 사람의 상실감, 절망감, 불안감 등의 심리상태 또는 그러한 것이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포괄하는 적절한 용어가 소외(alienation)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외라는 말은 상당 부분 일상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동료나 친구 또는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 간에 서먹한 느낌이 들 때, 그리고 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할 때도 소외라는 말을 쓴다. 또 자신이 종사하는 일이나 직무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때,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본질적인 보상과 보람을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