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대만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순수 불교의 모습과 도교 내지 토착 종교 등과 융합된 복합종교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불교 신자 중에서도 다른 토착신앙을 함께 믿는 경우가 많고, 전통 신앙이나 무속을 믿는 이들도 불교 사찰에 와서 재를 올리거나 기도회에 참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683년에서 1895년까지 청의 치하에 있는 동안 대만불교는 민간의 토착신앙과 혼합되어 민속불교 신앙의 형태로 나타났다. 현재는 불교계의 신앙 대상이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약 30여 제불보살이 섞여 있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중국불교의 역사에서 대만불교가 명확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청대 말로서, 대만을 거점으로 반청운동을 전개하려고 했던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의 통치 이후라고 볼 수 있다. 대만불교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일본강점기에 이뤄진 일본불교화 시기, 국민당 정부와 대만 거주민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던 계엄 시기, 1980년대 중반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이뤄지던 본토화와 주체화 시기, 그리고 이후의 국제화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오늘날 대만불교의 발전을 보면, 1980년대까지 계엄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대학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
들어가는 말대만불교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출가 수행자와 계를 지키지 않는 수행자들을 경책하고 수행자만큼 계를 소중히 하는 재가 신도들이다. 식당에서조차 수행자가 육식을 하려 하면 아예 음식을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대만불교에서 계를 지키는 ‘지계(持戒)’는 불교도들에게 목숨과도 같다. 깨달으면 계율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한국 불교도들과 출 · 재가자의 경계가 아예 없는 일본불교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많은 대중은 일본불교는 계율이 없고, 한국불교는 수계
1. 들어가는 말몇 년 전에 우연한 계기로 대만 종교계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에게 대만 답사를 권했던 사람이 대만불교가 대단하다고 하면서 한번 가자고 하였고, 나는 속는 셈 치고 그 답사에 참여하였다. 답사하는 동안 나는 대만불교를 더 일찍 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대만에 답사하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가지 못하였다.대만불교는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를 기반하는 것이기에 한국불교와 공통요소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도 한국불교보다 더 진전된 현대불교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대만불교의 특징적 모
1. 들어가는 말 대만은 얼핏 보기에 우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르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다. 단지 중국 지역의 광대함과 각 지역의 차이를 고려한다 해도 대만은 나름의 특색이 매우 많은 지역이다. 모든 지역이 그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대만은 매우 독특한 지역이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동아시아 다른 지역보다 좀 더 독특한 지역으로 여긴다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지역과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모든 지역의 특색은 대부분 지리적 위치 및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1. 서언대만불교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연구 자료는 1919년 일본 대만총독부에서 실시한 종교조사, 1996년 발간된 《대만불교백년사지연구(臺灣佛敎百年史之硏究)》 등이 토대가 되고 있다. 엄종정(嚴正宗) 저 《중독대만불교(重讀臺灣佛敎 : 戰後臺灣佛敎(正編))》(2004), 하면산(何綿山) 저 《대만불교(臺灣佛敎)》(2010) 등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불광연구원 편저 《대만불교의 5가지 성공 코드》(2012) 등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불광연구원에서 간행했던 《전법학 연구》에서 대만불교에 대하여 다양한 주제와 관점에서 집
— 불교, 새로운 공동체, 그리고 대안교육1. 전법선언에 담긴 교육적 지향어떤 가치와 그 지향은 선언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가치의 실천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된다. 붓다가 지향하고자 한 고귀한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서술은 아마도 전법선언일 것이다.35세에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룬 붓다는 27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 바라나시의 녹야원에 이르렀다. 거기서 정각을 이루기 전에 함께 수행한 다섯 수행자에게 중도와 팔정도, 사성제를 설했다. 다섯 수행자에게 여러 날에 걸쳐 법을 설하는 붓다의 시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코로나 팬데믹과 교육문제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생존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인식된 교육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막연히 전망했던 원격교육과 디지털 학습이 강제로 앞당겨지면서 지난 2년간의 교육계는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는 블렌디드 학습의 실험장이 되었다. 잘 설계된 실험장이기보다는 혼란과 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종의 생존 시험장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2년 동안 화상으로만 강의하다 보니 이제는 전면적인 대면 강의로 전환될 경우 강의 현장이 상당히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인간의 적응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1. 머릿말현대사회는 하루가 멀다고 느낄 만큼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등 고도의 정보기술과 과학문명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에 걸맞게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는 트렌드가 된 지 오래되었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로 학교교육만으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요구되었다. 따라서 평생 배워야만 사회의 흐름에 부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평생교육의 시대가 되었다. 이와 같은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국적으로 많은 사회교육 또는 평생교육 기관의 설립이 이루어짐으로써, 학령기가 지났어도 기회가 없었던 사람
들어가며연년생인 언니가 한 해 빨리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언니를 따라 너무나 학교에 가고 싶었던 여섯 살 어린 동생은 어머니를 졸라 초등학교 부설 병설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다. 여섯 살 아이는 그때부터 난생처음으로 부모가 아닌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을 받게 되었고 이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40년간 학교교육을 경험하고 있다. 그간의 받은 교육 덕분에 중등학교에서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육자가 되었다. 이제는 교육적인 것에 대한 이론과 해석을 내놓는 교육학자가 되어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현실’이라는 연구 주제는
1. 여는 말 우리는 지금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초생산의 시대, 가상현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소프트웨어의 초연결 시대, 융복합화된 초통합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화와 변혁의 한가운데서 머무를 자리와 나아갈 바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새삼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이런 시점에 ‘바람직한 가정교육’ 나아가 ‘불교의 지혜’를 조합한 논제가 주어졌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유형 중 1인 가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 머리말우리에게 교육(敎育)은 우선 문젯거리로 다가온다.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과 공교육의 약화, 그로 인한 사교육 팽창 등이 우리 교육을 말하고자 할 때 먼저 떠오르는 문젯거리들이다. 그것에 더해 2000년대 들어와서 부각된 가정이나 지역 배경에 따른 교육격차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비대면 원격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를 시작으로 혼자서 공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자기주도성에서 가정의 지원 정도에 따라 현저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왜 교육이 문젯거리가 되어버린
들어가는 글다른 서양 국가와 비교하면 호주는 아시아에서 비교적 가까운 나라다. 물론 남반구에 위치하여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심적으로 그리 가깝다고 볼 순 없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깝다고 한다. 특히 불교 인구가 2016년 18.1%로 보고된 크리스마스섬의 경우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350km 거리의 인도양에 위치하여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호주 땅이다. 이런 지리적 접근성은 아시아인의 이주나 교역을 일찍부터 용이하게 하여 호주의 주류 백인들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그 결과 1901년에 ‘백인 호주 정책(White Australia
불교의 기원과 교설적 발전은 분명 인도 및 아시아 등지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현재 불교의 영향력은 더 이상 지역적 구분으로 범위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종교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독일에 불교가 처음 알려진 것은 약 150년 전의 일이다. 아시아에서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불교가 전래된 북미나 호주 등의 지역과는 다르게, 독일을 포함한 유럽 지역의 불교는 학자들의 지적 관심에 의해 자발적으로 소개되었다.지난 반세기 동안 불교는 종교로서 유럽에서 괄목할 만한 가시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 가시적 성장이란 다양한 불교 종파
"(가톨릭) 교회의 맏딸인 프랑스는 불교의 나라가 될 수 없다."— 에릭 롬믈뤼에르"프랑스인에게 ‘불교’라는 단어는 무엇보다도 티베트불교를 연상시킨다."— 베르나르 포르 1. 부말(浮沫)에 불과한 프랑스에서의 불교 붐두 제사(題詞)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불교는 프랑스인들에게 여전히 이국(異國)의 문화에 해당하며, 기독교와 조화로울 수 없는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는 예나 지금이나 ‘신비적인(mystique)’ ‘불가사의한(ésotérique)’ ‘비논리적인(illogique)’이라는 수식어가 거의 자동으로 따
1. 영국과 불교의 만남영국은 식민지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만나게 된다. 1500년대 초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서구의 스리랑카 식민화가 시작되었고, 1600년대 중반부터 네덜란드가 스리랑카 남부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1796년부터 영국이 스리랑카를 전역을 장악하면서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1815년 캔디협정을 통해 스리랑카를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 당시 식민지 스리랑카의 관료들은 스리랑카불교를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종교로 여겼고, 개신교 전파를 통해 스리랑카를 기독교화하여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기반을
1. 시작하며: ‘빨간 머리 앤’의 고장캐나다 동부 끝에 자리한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州)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의 배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여름이 되면 주도(州都)인 샬럿타운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활기차게 북적이는데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10년대 후반부터 대만 관광객 수가 갑자기 증가했다는 것이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 관광청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에 연간 58명이었던 대만 관광객이 2010년대 후반에는 3,065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관광지에서
1. 들어가는 말“함께 일어서기 위해 함께 참선한다(Sitting Together So We Can Stand Together).”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는 영어의 ‘참선하다/앉다(to sit)’와 ‘대항하다/일어서다(to stand)’라는 표현의 대조의 맛을 살릴 수는 없지만, 이 표현은 미국불교 현주소의 주요한 모습을 간결하게 보여준다.종교와 철학은 인간 삶과 존재에 대한 의미와 궁극적인 진리에 관한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한다고들 한다. ‘궁극적’이라는 말은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서 ‘보편적’이라는 개념으로도 이해되어 왔다. 삶의
1. “집이 불타고 있다.” 2019년 다보스 포럼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호소하며 세계 정치 경제 지도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겪으며 조르조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재인용함으로써 그것은 기후변화를 넘어 이 시대의 총체적인 위기를 상징하는 비유가 되었다.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집이 불타고 있을 때처럼 행동하라는 툰베리의 호소에 아감벤은 불타는 집에서 평상시처럼 행동하며 인간다운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지젝은
-불교에서 바라본 프롬의 소외 이론 1. 서론: 소외의 일반적 개념 현대산업사회에서 사람의 상실감, 절망감, 불안감 등의 심리상태 또는 그러한 것이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포괄하는 적절한 용어가 소외(alienation)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외라는 말은 상당 부분 일상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동료나 친구 또는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 간에 서먹한 느낌이 들 때, 그리고 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할 때도 소외라는 말을 쓴다. 또 자신이 종사하는 일이나 직무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때,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본질적인 보상과 보람을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