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본능과 금지된 욕망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파괴와 열정의 욕구, 광기 어린 영감과 패륜적 창작에의 끌림은 예술가에겐 그리 낯설지 않은 덕목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의 안주를 저버리고 본능적으로 아니 필사적으로 삶을 탕진하듯 유랑하는 인물은 남다르다. 일체의 세상 규범과 최소한의 인륜 따윈 다 내던지고 탈출을 과감하게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때로는 죽음 언저리까지 바싹 다가가 생도 사도 아닌 그곳에까지 천연덕스럽게 발을 척 내딛는, 그런 용기 내지 천분을 지닌 이들은 비범하다. 그러나 막상 그런 삶은 드물다.
불교는 한국 역사를 지탱해 온 중요한 축의 하나이다. 4세기 후반에 한국사회에 처음 수용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단절도 없이 지속적으로 한국인의 삶과 심성에 깊게 자리 잡고 영향을 미쳐 왔다.다양한 사상이 펼쳐지지 않았던 삼국시대에는 전통신앙의 역할을 대신하며 사회에 기반을 쌓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사회 운영의 틀을 담당했던 유교와 함께 사회, 문화 면에서 광범위한 역할을 맡았다. 유교, 도교 등도 활발하게 꽃피웠던 고려시대에 불교는 사회 전반에 넓고 깊게 모습을 드리웠다.그러나 분명하게 유교를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시대
1989년 성본 스님이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에서 〈중국 선종의 성립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막 한국 불교학계에 입족(入足)했을 때, 필자는 당시 〈불교신문〉 기자로 있던 홍사성 선생과 함께 처음 만났다. 홍사성 선생은 필자에게 “성본 스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즉석에서 그러겠노라고 화답했다. 지금도 이 책은 민족사를 대표하는 저작물이다. 성본 스님의 《중국선종의 성립사 연구》는 초기 중국 선종사를 탐구한 보기 드문 책이다. 선종의 조사인 보리달마에서 능가종과 동산
새로운 맥락을 따라 읽는 붓다의 생애역사로 읽을 것인가, 신화로 읽을 것인가붓다의 생애를 최초로 다룬 책은 장편서사시 형식을 빌린 아슈바고샤(Asvaghosa, 마명)의 《붓다차리타(Buddhacharita, 불소행찬)》이다. 이 책은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자타카(본생경)》를 비롯, 붓다의 전기에 해당하는 사실이 기록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중허마하제경(中許摩詞帝經)》 《불본행경(佛本行經)》 《중본기경(中本起經)》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중본기경》 등 붓다의 생애를 언급하고 있는
평소 마성 스님을 신념이 있는 초기불교 학자라고 생각해 오고 있다. 불교 일반을 다루는 데에 초기불교의 관점에 서 있음을 분명히 느끼기 때문이다. 스님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애매하게 절충하거나 그때그때 대세에 따라 편승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피력해 오고 있다. 또한 출가자이면서도 학자로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다.이 책의 서론에서 저자 스스로 밝히는 집필의 동기는 “붓다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궁극의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초기불교 사상의 전체적인
누가 이 책을 번역할까?필자는 대학원 선배인 이철훈 선생의 권유로 처음 이 책을 원서(Buddhism and Political Theory)로 접했을 때, 누가 번역할 수 있을지 쓸데없는 걱정이 앞섰다. 불교와 정치사상을 함께 다루는 것이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상좌부와 대승불교 등의 경전들을 인용한 단락도 즐비했기 때문이다. 또, 동남아 근대화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불교 정치사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기에 이를 잘 번역하려면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안목도 필요하고, 동서양의 시민성을 다루는 장에서는 불교뿐만 아니라 서양윤리학적 배경지식도
1.20세기 초 근대 학문으로서 한국불교사 연구가 시작된 이후 《조선불교약사》(권상로, 1917), 《조선불교사》(이능화, 1918),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1930), 《조선불교사고》(김영수, 1939), 《한국불교사》(우정상 · 김영태, 1969), 《한국불교사연구》(안계현, 1982), 《한국불교사 개설》(김영태, 198
저 위에서부터 서민들에게까지 한국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 정치학을 전공으로 하는 정규직 교수들은 별로 없다. 한국 학계가 원래 서양의 수입오퍼상 구실을 하는 데다가 더하여,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유럽의 학문이 미국의 그것에 밀려 빠른 속도로 주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치학계는 미국의 식민지라 해
종교와 젠더연구소 옥복연 소장이 번역한 미국 여성 종교(불교)학자 리타 그로스✽의 《불교 페미니즘,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Buddhism After Patriarchy: A Feminist History, Analysis, and Reconstruction of Buddhism)》는 불교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책이다. 리타 그로스
1994년 12월에 처음 인도 성지를 순례했다. 당시 조계종 비상기구인 개혁회의 소임을 마치고 출가 당시의 초발심을 회복하기 위해 석가모니 붓다의 발자취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내심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미리 사진으로 성지를 보았기 때문에 유적과 유물에 대한 호기심은 애초 없었다. 대신 살아 있는 붓다의 숨결을 가슴에 안고 싶었다. 2,700년 전의 붓다가
제목이 평범하되 매력적이다. 누구나 마음이 아픈 시간이 있을 테고, 불교라는 종교와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힘을 합쳐 그것을 도와주려 한다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준다. 불교는 물론이고 심리학을 그리 오래 공부하지 않았기에 제목에 끌린 독자의 시선으로 공부하듯 읽어보았다. 돌아보면, 필자는 임상심리학 박사이자 통찰명상 수행원 등 미국 내 최대 불교 수행 그룹의 설
‘법담(法談)’의 사전적 의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혹은 “좌담식으로 불교의 교리를 서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의 대담”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은 산사에서 스님들의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법담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광준 교수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법담의 개념을
인도학 불교학을 연구하는 데 인도 사상이나 문화의 모든 분야를 바라문의 베다 종교 전통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는 오랜 경향이 있었다. 이는 주로 서구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기독교가 유대교의 배경 속에서 태동한 것이라는 생각과 유사했다. 불교의 기원도 마찬가지인데, 단순하게 베다(Veda) 시대, 브라흐마나(Brāhmaṇa) 시대, 아
‘절은 절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찰이 다른 조직이나 단체처럼 시스템을 갖추어 이른바 규모경제를 살아가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고 있다. 그만큼 우리 불교계 또한 예전과는 사뭇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더 많이 변해야 할 부분도 있고, 잘못된 방향으
책의 특징과 가치이 책은 생명과학과 불교의 만남을 시도한 화제작이다. 생명과학과 불교의 만남을 시도한 사례는 거의 없다. 생명과학철학자인 유선경 교수와 불교철학자인 홍창성 교수가 공동으로 불교의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해석한 책이다. 생명체와 생명현상이라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문용어가 아닌 일상용어로 논
1. 불교경제학의 등장불교에서 생사(生死)의 문제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급선무다. 그러나 불교 경전에는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탈과 열반에 관련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전에는 사회 및 경제생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해탈과 열반에 관한 내용 중에 세간에 대한 이야기가 더불어 설해지곤 한다. 그리고 드물지만 장아함 《선생경》이나 중아
지인이 내게 읽으라고 건네준 책은 대학 다닐 때 세미나에서나 읽었을 법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복사했는지 알 수 없는 흐린 복사지를 제본한 것이었다. 지인은 그 책을 읽고 자신이 받았던 감동을 몇 번이나 거듭 강조하며 읽기를 권했다. “이 책을 읽고 불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책의 제목은 《아! 붓다》. 글을 쓴 이의
불교를 철학하는 시간“불교에서는 윤회를 주장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윤회하는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불성(佛性)이 있다는 주장 역시 무아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이런 질문들이 일반 불자들 사이에서도 많아진 것 같다. 불성,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
‘선’과 ‘노장’은 사상적으로 유사한 것인가? 사실상 형식적인 논리나 표현양식으로 볼 때, 상당한 유사성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후기 조사선(祖師禪)’으로 분류되는 시기에 출현한 어록들을 일람한다면, 이러한 유사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분명하게 조사선은 불교로부터 나왔고, 노장은 바로
동국대 불교학과 고영섭 교수의 신작 《한국불교사 궁구》 1, 2는 두 권을 합쳐 1,57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읽는 이를 우선 압도한다. 목차를 보아도 고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근현대기까지 한국불교사의 전 시기를 다루고 있어 읽기에 녹록지 않은 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제목에 있는 궁구(窮究)라는 단어부터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진다. 저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