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스리랑카는 인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다. 열여덟 차례의 식민통치를 받는 등 여러 서양 국가의 식민지 시대를 거쳤다. 식민지 역사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한 득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비참한 사회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450년 동안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러한 무형의 의식 지배로 인한 갈등 끝에 결국 ‘국가부도’를 불러온 상태이다.이런 국가 위기를 진단하고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 사회 인식을 새롭고 올바른 방향을
1. 씨줄과 날줄 위에서 선 술락의 90년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틱낫한 스님이지만 국제 참여불교운동을 실질적으로 조직화하고 이끌어온 지도자는 태국의 술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 1933~ ) 박사이다. 1989년 술락 시바락사의 주도로 아잔 붓다다사, 틱낫한 스님, 달라이 라마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여러 나라의 불교운동 지도자와 활동가, 학자들이 결합한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가 창설되었다.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날줄인 경도와 씨줄인 위도가 교차하는 지점을
1. 암베드까르(1891~1956)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폐지하고 1858년부터 인도를 직접 지배했다. 이를 위해 1858년 인도통치법과 1861년 인도입법위원회법(Indian Councils Act, 1861)을 제정하고 이후 영국의 정책에 따라 수차례 개정했다. 한편으로 1835년의 매콜리(Thomas Babington Macaulay)에 의한 교육안, 1854년 우드교육특송문(Wood’s Educ-ation Despatch) 등에 의거하여 인도의 교육제도를 수립하였고 커즌 총독은 1902년에 인도대학위원회를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 불교 명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할 때 대개 한국의 간화선과 남방불교 특히 미얀마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수행이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 위빠사나 수행법이 한국에 알려진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미얀마의 수행 선사들이나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법을 체험한 한국의 수행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그런데 30년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의 불교 명상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빼놓을 수 없는 수행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위빠사나 수행법이 지닌 몇 가지의
1. 머리말20세기 전반기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온통 황폐해진 시대였다면, 후반기는 그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고 사람들이 입은 육체적 ․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며 인류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자 여러 분야에서 출현했던 선각자들은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이 가운데 불교계에도 세계적인 스승들이 나타나 불교적 가치와 사상을 바탕으로 피폐해진 인류의 정신세계를 회복시키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그들 가운데 한국불교의 전통과 사상을 세계
티베트의 운명14대 달라이 라마(1935~ )는 정치적 불교도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정치와 불교는 분리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종교적 은둔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가 대승불교 전통에 있다는 점, 최근 300여 년의 티베트 전통에서 달라이 라마의 직위가 종교적, 현세적 지도자였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티베트의 슬픈 운명이었을 것이다.티베트 현대사는 참 슬프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폭압은 일본의 조선 탄압보다 10배, 100배 더 무자비해 보인다. 1950년 10월 중국이 한국
틱낫한(1926~2022)은 1995년, 2003년, 2013년 세 차례 한국을 찾았다. 첫 번째 방문 때는 한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두 번째 방문 때는 그의 저서 《화》가 베스트셀러여서 국내에서 세계적 가수나 영화배우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대중이 운집했고, 카메라 불빛이 쏟아졌다. 그 소란 가운데도 시종일관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는 듯 온화한 표정과 몸짓,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빨리빨리’라는 성급함이 지배하는 한국인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1. 들어가며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는 서구사회에 선불교를 소개한 불교학자로, 1950년대 선불교 열풍을 이끌어 미국 사상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영향으로 선의 영문 표현은 일본어 발음 그대로 젠(Zen)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없었다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선이 인기를 끌 수 없었을 것이다.1870년 일본이 근대화의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에 태어난 스즈키 다이세츠는 삶에 대한 고민에서 자연스럽게 선 수행을 시작했다. 출가한 선사는 아니었지만 선사처럼 살았던 그는 1897년 미국으로
20세기 중반부터 크게 성장한 대만불교는 20세기 말 대륙불교의 소생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덕분에 최근 몇십 년간 중국대륙의 불교는 가히 경천동지의 폭풍 성장을 해왔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소박하나마 필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대륙불교의 시기별 변화 양상을 살핀 후 현 중국불교 발전에 공헌한 주요 불교 인물을 선별하여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20세기를 건너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화권 불교계에서는 너무도 많은 일들이 발생했고 많은 불교 인재가 출현했다. 이들은 급변하는 역사 사건들과 조우하며 지혜롭게 현대 중국불교를 지켜
1. 들어가며중국대륙의 불교는 중국공산당의 종교에 대한 정책에 따라 쇠퇴와 부흥의 길을 걸어왔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 불교를 포함한 종교에 대해 중국공산당은 세 가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적 신념, 혁명의 조력자, 혁명의 적. 중국 헌법에 의거하면 중국의 공민들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기에 처음에는 종교 신념을 인정하였으며, 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새로운 국가를 세워갈 종교인들과의 협력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종교를 혁명의 적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1. 들어가는 말불교의 근본 교리는 ‘연기(緣起)’이다. 연기의 근본 원리를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만나 새로운 변화 즉 새로운 것이 발생한다.” 이것은 불교가 말하는 법이도리(法爾道理: 존재 실상의 원리)인데 ‘불교’라는 사회현상도 예외가 아니다.불교는 인도에서, 중앙아시아에서, 동남아에서, 중국에서, 그리고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큰 변화가 발생하기도 하고 혹은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새롭게 변화한다
1. 머리말오늘날 중국불교는 얼른 보기에 한국불교나 일본불교와 다른 점이 없다. 물론 출가자의 복식이나 사원의 구조와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불교도가 자유롭게 종교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 다름은 종교 활동의 자유와 관련된다. 종교 활동은 사실 ‘신앙자와 신앙 대상 간의 관계’로만 한정할 수 없다. 그 종교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도 당연히 종교 활동에 포함되고 그것의 연장으로 사회상의 특정 이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행동하는 것도 종교 활동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나
— 불교, 새로운 공동체, 그리고 대안교육1. 전법선언에 담긴 교육적 지향어떤 가치와 그 지향은 선언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가치의 실천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된다. 붓다가 지향하고자 한 고귀한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서술은 아마도 전법선언일 것이다.35세에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룬 붓다는 27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 바라나시의 녹야원에 이르렀다. 거기서 정각을 이루기 전에 함께 수행한 다섯 수행자에게 중도와 팔정도, 사성제를 설했다. 다섯 수행자에게 여러 날에 걸쳐 법을 설하는 붓다의 시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코로나 팬데믹과 교육문제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생존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인식된 교육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막연히 전망했던 원격교육과 디지털 학습이 강제로 앞당겨지면서 지난 2년간의 교육계는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는 블렌디드 학습의 실험장이 되었다. 잘 설계된 실험장이기보다는 혼란과 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종의 생존 시험장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2년 동안 화상으로만 강의하다 보니 이제는 전면적인 대면 강의로 전환될 경우 강의 현장이 상당히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인간의 적응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1. 머릿말현대사회는 하루가 멀다고 느낄 만큼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등 고도의 정보기술과 과학문명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에 걸맞게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는 트렌드가 된 지 오래되었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로 학교교육만으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요구되었다. 따라서 평생 배워야만 사회의 흐름에 부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평생교육의 시대가 되었다. 이와 같은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국적으로 많은 사회교육 또는 평생교육 기관의 설립이 이루어짐으로써, 학령기가 지났어도 기회가 없었던 사람
들어가며연년생인 언니가 한 해 빨리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언니를 따라 너무나 학교에 가고 싶었던 여섯 살 어린 동생은 어머니를 졸라 초등학교 부설 병설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다. 여섯 살 아이는 그때부터 난생처음으로 부모가 아닌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을 받게 되었고 이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40년간 학교교육을 경험하고 있다. 그간의 받은 교육 덕분에 중등학교에서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육자가 되었다. 이제는 교육적인 것에 대한 이론과 해석을 내놓는 교육학자가 되어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현실’이라는 연구 주제는
1. 여는 말 우리는 지금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초생산의 시대, 가상현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소프트웨어의 초연결 시대, 융복합화된 초통합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화와 변혁의 한가운데서 머무를 자리와 나아갈 바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새삼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이런 시점에 ‘바람직한 가정교육’ 나아가 ‘불교의 지혜’를 조합한 논제가 주어졌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유형 중 1인 가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 머리말우리에게 교육(敎育)은 우선 문젯거리로 다가온다.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과 공교육의 약화, 그로 인한 사교육 팽창 등이 우리 교육을 말하고자 할 때 먼저 떠오르는 문젯거리들이다. 그것에 더해 2000년대 들어와서 부각된 가정이나 지역 배경에 따른 교육격차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비대면 원격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를 시작으로 혼자서 공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자기주도성에서 가정의 지원 정도에 따라 현저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왜 교육이 문젯거리가 되어버린
1.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했을 때의 이야기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며 만류하는 숫도다나왕에게 태자는 네 가지를 들어주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 네 가지란 영원한 젊음을 누리며 늙지 않는 것, 영원히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2,600여 년 뒤에 태어났다면 숫도다나왕은 아들의 출가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종교적 구원의 길을 떠났던 고타마 싯다르타와 달리 2,600여 년 뒤의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1. 종교정책의 변화 추세공산주의 사상에서 종교는 반동적 의식 형태에 속한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은 초기부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종교의 보장 여부가 다양한 대중을 포용하는 통일전선의 구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정치적 효용성을 고려한 소극적인 용인에 가까웠다. 종교 자체에 대한 공산당의 부정적인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그 부정적인 입장이 노골화되어 종교 말살 정책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덩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