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다루어 보고자 하는 과제는 ‘서구에서의 불교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과문함과 여러 가지 제한사항으로 인해 유럽을 포함한 서구사회 전체를 논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그래서 이 글은 주로 미국사회에서의 불교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미국이 서구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사회가 서구의 다른 사회를 가늠해 보는 좋은 척도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불교를 놓고 볼 때 미국은 서구에서 가장 대표적인 불교 전파 지역이고, 또한 그 활동도 가장 활발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제와 관련한
1. 들어가는 말 간화선과 위빳사나에 대한 비교는 여러 각도에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의 주제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가"이므로 필자는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차이점은 분명히 인정해야 하겠지만 이 둘은 근본적으로는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부터 먼저 내리고 글을 전개하려한다. 왜냐하면 간화선과 위빠사나가 '근본적으로
1. 들어가는 말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명상 또는 수행의 열풍이 불고 있다. 물질적 가치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삶의 질을 높여 진정한 의미에서 '잘 살기(well-being)' 위한 현대인의 구도의 열기이리라. 이 글은 위빠사나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실제적인 수행과 그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현재
1. 문제의 소지는 무엇인가 근래에 들어 화두선 전통의 우리나라에 미얀마 등지로부터 위빠사나 수행법이 소개되면서 양자간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 화두선 우위론의 입장에서 위빠사나 열등론이 제기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화두선 이론가나 실천가의 대부분은 현재 유통되는 위빠사나를 "낮은 단계의 소승불교 수행법" 정도로 간주하
1. 머리말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순기능 때문이다. 정체성은 곧 그들 자신의 존재의미와 연관되며, 새로운 비전의 모색에도 중요한 이념적 근거가 된다. 이 같은 정체성의 기능과 역할은 종교집단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한국불교 또한 이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다. 그 동안 한국불교는 회통(會通)불교 또는
1. 서언 1954년 5월, 불교정화를 요망하는 이승만의 ‘담화’로부터 촉발된 이른바 불교정화운동은 당시 불교계의 큰 파장과 혼란을 가져왔다. 비구·대처승 계열로 나뉘어 각기 종단의 주체임을 강조하면서 종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갈등과 대립으로 전개되었던 정화운동은 1962년 4월 통합종단의 출범으로 일단락되었다. 정화운
1. 머리말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이 소용돌이는 정치·경제·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와 나아가 인간의 행동 양식이나 의식 구조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물결이 닿지 않는 분야가 없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대격변이 예측되는
1. 서론 필자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만들어 쌍윳따 니까야 3권을 출간한 지 꼭 한 해가 되어 간다. 빠알리 성전 번역의 원을 세운 지 8년 만의 일이지만 감개무량한 사업의 작지만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된 것은 불보살의 가피와 여러 스님들의 사심 없는 도움으로 비롯되었다. 지금 경불련의 초기불교 경전 읽기 모임에서는 매주 시범적으로 쌍윳따 니까야 읽기 모임
1. 들어가는 말 한국사람이 한국에 살다가 미국에 이민을 가서, 이제는 한국어도 다 잊어버렸다고 하자. 이 사람을 한국인이라고 보아야 할까? 미국인이라고 간주해야 할까?몸은 노란 얼굴을 한 동양인이고, 언어와 사고방식은 완전히 미국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육신’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바뀌지 않는 요소이고, ‘말’이나 ‘사유형태’는 장소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이런 구분을 불교사상의 흐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불교사상에도 장소와 시간이 아무리 변천하고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측면이 있고, 공간과 시간에 따라 바뀌는
1. 육조단경, 무엇이 문제인가. 남종의 조사 육조혜능의 설법집으로 간주되고 있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은 선학·선사상을 연구하고 실천수행하는 사람들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선문헌이다.중국 당나라 시대에 《육조단경》(790년경 성립)이 출현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육조단경》을 읽고 연구하고 독자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음은 《육조단경》이 선
1. 들어가는 말 대승불교에서는 초기불교를 소승(小乘)이라 한다. 특히 대승불교 문화권인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소승이라는 말을 아주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소승이라고 얕보고 스스로 대승이라는 우월 의식을 과시하려 하는 경우까지 볼 수 있다. 그러한 정도가 매우 무모하거나 또는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질때도 있다. 나아가서 이 말이 학문적으로 보편 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