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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글을 청탁받을 줄 몰랐다. ‘늙음을 돌아보다’라니! 나에게 이 글을 쓰라는 것은 내가 이미 늙어 가고 있다는 객관적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겠다. 나는 그동안 《청춘은 아름다워라》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글을 즐겨 읽고 또 조사(祖師) 어록이나 유교 경전 또는 서양철학서만 독서해 왔다.그런 책들은 늙음이 주가 아니라 항상
고령화사회와 불교
송석구
2016.12.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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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지난여름, 섭씨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오래전 타이완에서 잠시 공부하며 살았던 경험으로 칙칙한 아열대 습기의 찬 기후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우리나라 여름 더위,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이 산중의 여름 한 철은 너무나 감사하고도 고마운 계절로 살아왔다. 그런데 지난 여름방학 한
고령화사회와 불교
일진
2016.12.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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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고희를 맞았다. 요즈음은 고령화 사회라는 말을 하듯이 일흔이 나이 많은 축에 들어가지도 않지만, 옛날에는 ‘인생 칠십이 드문 일’이라 하였다.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이란 시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시구에서 고희(古稀)라는 말이 나왔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의 평균수명이 늘
고령화사회와 불교
지안
2016.12.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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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며붓다 만년의 여정을 다룬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시자 아난다는 병마와 싸우며 나날이 노쇠해 가는 스승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다. 금방이라도 입멸해 버릴 것 같은 스승을 바라보며 그가 찾아낸 위안은 ‘비구 승가에게 무언가 특별한 가르침을 주지 않은 채 스승이 열반에 드실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붓다는 그런 아난다를
고령화사회와 불교
이자랑
2016.12.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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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老苦)에 대한 불교적 이해1. 들어가는 말어느 날 코살라(Kosala)의 빠세나디(Pasenadi) 왕이 고따마 붓다에게 “세존이시여, 태어나는 자에게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예외인 자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붓다는 금과 은이 많고 재산과 자구가 많고 재물과 곡식이 많고 크게 부유하고 큰 재산을 지닌 풍
고령화사회와 불교
원과
2016.12.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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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학적, 의학적, 심리학적 차원에서 본 늙음의 정의1. 노화란 무엇인가길을 가다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인데 머리도 희어졌고 짙던 머리숱도 많이 빠졌다. 반가운 눈빛은 그대로인데 눈가와 입가에는 미소와 함께 주름살도 깊게 패어 있다. 이 모두가 세월에 따라 늙어간다는 신체적 신호이리라. 이렇게 변한 서로의 모습
고령화사회와 불교
이상현
2016.12.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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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글요즈음의 한국사회는 가히 ‘분노사회’라 할 만하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분노를 적절하게 조절하거나 억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폭행하거나 심지어 살해까지 한다.얼마 전 수원에서는 길을 가던 70대 노인이 30대 여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노인이 자신을 째려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그
한국사회 분노, 불교
박경준
2016.09.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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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노 감정에 대한 생명철학적 이해감정, 생명의 주체적 반응과 표현감정은 생명의 반응이고 표현이다. 생명은 고정된 실체나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주체다. 생명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생명의 표현인 감정도 고정된 실체나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주체다. 따라서 생명과 감정은 과학적 관찰, 철학적 성찰, 종교적 관조의 대상이기 전에
한국사회 분노, 불교
박재순
2016.09.1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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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분노(憤怒, anger)란 화가 치밀거나 끓어오르는 화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화를 이기지 못해 번민하는 마음을 통괄해 부르는 말이다. 분노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어떤 자극이 위협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감지하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른 심리 생리적 반응이다. 또한 분노는 공격적 감정으로서 개인적 좌절에서는 물론 집단적 좌절에 대한 반응으로 야기되기
한국사회 분노, 불교
신승철
2016.09.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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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선 수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선 수행은 기사구명(己事究明) 즉 우리 자신의 일을 궁극적으로 밝히는 일이다. 우리 자신의 일이란 삶의 근본 문제인 태어나고 죽는 근원을 밝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궁극의 일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에 자비로 회향될 수밖에 없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마음의 근원을 깨닫는 까닭에 구
한국사회 분노, 불교
오용석
2016.09.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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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이 라마에게 묻다1. 머리말2천 수백 년 전의 붓다는 의분(義憤)과 그에 따른 폭력이나 살인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사명당의 의병(義兵)과 안중근 의사(義士)의 가해 행위는 어떻게 보았을까? 역사에 의병이나 의사의 기록 없는 국가나 민족은 없을 것이지만, 이런 물음은 다루기가 어렵다. 고대 인도에 사명당과 안중근과 비슷한 인물이 존재했다는
한국사회 분노, 불교
허우성
2016.09.1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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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논란불교계에 다시 ‘깨달음 논쟁’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 중요성을 직감한 교계 언론에서는 ‘깨달음 논쟁’이 속히 본격화되기를 촉구하기도 한다.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천명과 돈오점수 비판으로 촉발되었던 ‘돈점논쟁’의 뜨거운 열기가, 지금 다시 새로운 내용으로 계승되기를 기대하는 분
깨달음과 8담론
박태원
2016.06.0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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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우리는 일상 속에서 생존의 욕구를 기반으로 삼아 살아가는 존재자이다. 만약 생존 욕구가 없다면 먹을 것을 찾고자 하는 노력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고,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도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생존 욕구는 식욕(食慾)과 안전에의 욕구로 이어지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주장과 같이 자신의 어쩔
깨달음과 8담론
박병기
2016.06.0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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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깨달음’은, 긴 잠에서 깨어 새삼 자기를 확인하듯, 자기의 본래면목에 대한 자기의 직각적 확인인가, 아니면 인식주체의 인식대상에 대한 명료한 활동인가? 어느 편에 서는가에 따라 ‘깨달음’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본래면목과 인식대상의 정체성에 따라 ‘깨달음의 콘텐츠’가 달라진다.
깨달음과 8담론
최일범
2016.06.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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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지과학에서 마음의 지적 이해21세기 들어 철학자를 비롯한 인문학자들이 뇌과학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마음이 뇌고 뇌가 곧 마음이라는 견해가 뇌과학의 근본 입장으로 점차 굳혀져 가고 있다. 우리말의 ‘마음(心)’ 하면 심장이 떠오르지만, 서양 말의 ‘마인드(mind)’는 기억, 생각, 의도의 의미를 그 어원에
깨달음과 8담론
양해림
2016.06.0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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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들의 잔치다시 깨달음이 문제다. 영원의 철학이기 때문일까, 미완의 논쟁이었기 때문일까? 크나큰 서원 때문일까, 덧없는 욕망 때문일까? 깨달음을 거론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말들의 잔치……. 전쟁과 논쟁이 한창이었던 1135년 남송(南宋) 때의 일이다. 참혹한 민생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적 능력으로는 부
깨달음과 8담론
변희욱
2016.06.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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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Yoga), 인디아 문화의 꽃요가(Yoga: dhyāna, 禪)의 깊은 명상수행은 직관, 즉 단숨에 진리를 꿰뚫어버리려는 독특한 정신세계의 소유자들에게는 진리를 탐구하는 유일하고도 진실한 방법이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여 요가(dhyāna, 禪)의 깊은 명상을 하면, 그 이름이나 형상은 사라져버린
깨달음과 8담론
이평래
2016.06.04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