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현실세계에서 이전과 같은 위력을 갖지 못하게 된 탈종교화 시대, 종교예술이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근대 이후, 종교예술이 기대었던 상징체계가 근대적 합리성에 의해 부정되었고 그 종교적 신화적 의미는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빛바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성상(聖像)’ 또는 ‘성보(聖寶)’라는 말을 대신하여 ‘종교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래, 아니 ‘예술작품’으로 호명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진지하고 열성적인 종교적 숭배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 미적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증명
2015년 통계청의 종교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불교 인구가 많이 감소하여 불교가 제2의 종교가 되었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여기저기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불교의 현재 모습을 반성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앞날을 헤쳐나갈 지혜는 무엇인가. 붓다는 어떻게 하면 불교가 쇠약해지지 않는지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장아함 《유행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의 불퇴법(不退法)’이 그것이다.첫째, 자주 서로 모여 정의(正義)를 강론해야 한다. 둘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동(和同)하여 서
요즘 지구촌은 말 그대로 화택(火宅)이다.기후 온난화로 인해서 ‘불타는 지구’가 되고 있다는 걱정부터 여러 나라에서의 지진과 전쟁의 화염은 ‘불난 집’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젊은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 나갔다가 압사당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또 한편에서는 폭우와 화재로 거처를 잃은 이웃들의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다 밤낮없이 으르렁대는 정치권의 싸움질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세간사란 본래 변화무쌍하고 괴로운 법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는 하지만, 매스컴이 전하는 내용들에 너무 충
불교는 세상과 불화하기 위해 태어난 종교다. 불교의 가르침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필요하지만, 세상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불교는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불교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불교에 짐 지워진 역사적 사명이다.불교가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자기 좋을 대로만 살려고 한다. 욕심내고 화내고 집착하는 이른바 삼독에 물든 무명의 삶을 원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고, 그렇게 해야 자기 좋을 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살아 있는 한 적당한 욕망과 분노와 집착은 삶의 활력
요즘 중국은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 불교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중국불교의 연구자도 인도불교와 한국불교의 연구자에 비교하면 적은 편에 속하고, 게다가 중국 현대불교의 동향에 대해서는 한국 불교학계에서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불교와 중국불교의 관계그러나 한국불교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중국불교의 영향이 매우 컸다. 물론 한국불교의 대표적 인물 원효(617~686)는 중국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고, 이 점이 현재 한국불교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리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특징을 가진 호모사피엔스의 인류(human beings)는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생물학적인 유전자의 변이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은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자연의 능력을 넘어선 새로운 인간종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자연 상태의 인간(human)은 변화 과정에 있는 트랜스휴먼(trans human)으로, 그리고 이를 넘어선 포스트휴먼(post human)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이나 각종 사건 사고로 신체적
올해도 우리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며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의 의미를 되새겼다. 《묘법연화경》 방편품에 따르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일대사의 인연은,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바른 지견을 깨우쳐서 삶을 올바르게 살도록 이끌어주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남섬부주(南贍部洲) 어디쯤인가 부처님이 오시는 길에 커다란 장애물이 놓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바르게 가야 할 방향을 잃고 이토록 좌충우돌 표류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너나없이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올해 선거 때문에
만해 한용운은 일찍이 그의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불교의 개혁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해방 이후 대한불교조계종에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역경, 포교와 함께 3가지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추진하였다. 현재 시점에서 3가지 사업을 평가해본다면, 역경은 팔만대장경이 한글로 번역되는 등 성과를 이루었고, 교육은 출가자의 경우는 교육 체계를 어느 정도 정비한 듯하다.물론 아직도 최선의 교육 체계를 마련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나, 재가자에 대한 교육 체계에 비하면 출가자의 교육 체계는 상당한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모든 것이 멈추었다. 학교가 폐쇄되고 직장은 재택근무로 전환하였고 종교시설도 문을 닫았다. 일상이 멈추고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듯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급격한 변화의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평상시였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신체적 제약을 저항 없이 받아들였고,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는 일이 일상화되었으며, 대학 강의와 각종 모임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등 어느새 뉴노멀에 적응해가고 있다. 불과 2년 사이에 우리의 삶은 혁신적으로 바뀌었다.하지만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는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거나 무감각해지기까지 했다. 기후위기나 생태순환 장애, 환경파괴 같은 말들이 그 구체적인 맥락에 속한다. ‘또 그 이야기야?’ 하는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폭염과 혹한, 폭풍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일상화 등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징후들이다.살아가다가 넘어질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거나 난관이
SNS에서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슬리퍼 차림에 백팩을 맨 젊은 미얀마 아빠가 어린 딸과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군경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고, 수백 명이 희생된 상황이라 어쩌면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보고 가슴이 아픈 이유는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아버지 영정을 든 또래 사내아이의 눈망울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금 미얀마의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광주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왜 돌아오지 못할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불교학계에 《인도학불교학연구》라는 학술지가 있고 회원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한국 불교학계의 역량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불교학계의 전개와 활동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큰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교학을 공부하는 대학이 처음에는 동국대학교 한 곳이었다가, 그다음에 원광대학교, 중앙승가대학교가 추가되었고, 그 뒤를 이어서 위덕대학교, 금강대학교,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능인불교대학원대학, 동방문화대학원대학 등이 출범하였다. 또 국립대학교와 유명 사립대학교에서 철학과, 역사학과
2020년 연초부터 온 세상이 코로나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자연히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간 사방팔방에서 알려주는 정보에 의하면 세계사의 오래전부터 다양한 전염병이 여러 차례 사람들을 혹독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데, 그 역사를 거의 모른 채 살아왔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2003년도의 사스 · 2009년도의 신종플루나 조류독감(AI) · 2015년도의 메르스 때까지도 바이러스니 전염병이니 하는 소식에 대해서 남의 일처럼 잠깐 건성으로 들었던 것 같다. 한편에서 일찍부터 이 분야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팬데믹(
2020년 7월 대한민국은 2개의 죽음을 둘러싸고 4갈래로 갈라졌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의 죽음과 장례절차 때문이었다.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은 모두를 당황에 빠뜨렸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 하루 전까지 시정업무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그였다. 그러던 사람이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하자 자살했다.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서울시장으로
환경위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경제성장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를 담은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나온 것이 1972년이다. 그 당시 우리는 석유파동과 같은 위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었다. 공장은커녕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학교에서 어쩌다 접할 수 있었던 공장 굴뚝의 뽀얀 연기는 강 너머 무지개 같은 설렘의 대상이었을 정도다.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성장을 이뤄낸 우리는 외형적으로
양두조의 대립과 갈등옛날 설산에 공명(共命)이라는 새가 살았다. 머리는 두 개이나 몸뚱이는 하나로 붙은 양두조(兩頭鳥)였다. 흰 머리를 가진 쪽은 항상 몸을 생각해서 맛있고 좋은 과일을 골라먹었다. 그러나 검은 머리 쪽은 흰머리가 항상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못마땅했다.‘어찌하여 자기만 항상 맛난 과일과 음식을 먹고 나는 먹지 못하는가!’질투가 난 검은 머리는 독한 열매를 따먹었다. 그랬더니 온몸에 독이 퍼져 죽고 말았다.이 비유는 《잡보장경(雜寶藏經)》 3권에 나오는 머리는 두 개지만 몸뚱이는 하나인 양두조 이야기다. 머리 둘 달
세상살이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재채기를 잘못해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물 한 모금 잘못 먹다 사레가 들리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더 어렵다. 만원 전철에서 어깨 조금 밀쳤다고 눈 흘김을 받고 고속도로에서 끼어들기 잘못했다고 보복운전 을 당하기도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는 또 어떤가. 겉으로는 우방이라고 웃는 척하지만, 속내는 굴종과
우리는 삶의 의미 물음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자들이다. 일상에 존재하는 존재자와 그 존재자들을 포용하는 이념 또는 보편적 속성으로서의 존재를 구분하고자 하는 독일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우리 인간을 구별 짓는 요소가 바로 그 존재 자체에 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물음 속에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와 같은 의미 물
불교는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종교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언제나 승가 중심이었다. 재가는 승가를 외호하고 수행환경을 제공하는 복전(福田)의 역할에 머물러 왔다. 재가자의 위상과 역할에 반전을 일으킨 것은 대승불교이다. 불탑 주변의 불지(佛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법사들이 대승불교의 흥기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대승경전에는 재가자가 종교적 권위를 가진 주체로
독립은 일차적으로 누구 또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를 지닌다. 스스로 홀로 섬[獨立]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과정을 포함하고, 이것은 다시 물질적인 예속과 정신적 예속 모두를 넘어서는 것을 전제로 하여 가능해진다.올해 들어 3 · 1운동 관련 이야기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100주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