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미의 불교학계에서는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텍스트에 담긴 교리와 철학을 연구하였던 고전적이고 규범적인 불교학을 뒤로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불교학이 대세가 되었다. 루이스 고메스(Luis O. Gómez, 1943~2017)는 북미 불교학이 포스트모더니즘, 역사주의, 탈식민주의의 불교학으로 변화하던 시기에 그 변화와 발전의 선두에 있었던 학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불교학은 ‘불교’란 다양하므로 같은 표준으로 잴 수 없다는 생각, 즉 세속의 불교 전통들은 서로 본질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것이므로 이들에게서
1. 현대 스리랑카가 낳은 불세출의 불교 철학자쿨라팃사 난다 자야틸레케(Kulatissa Nanda Jayatilleke, 이하 자야틸레케)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철학적 해석’으로 회자되는 《초기불교의 지식론(Early Buddhist Theory of Knowledge, 이하 EBTK)》이라는 책으로 세계적 인정을 받은 불교 철학자이다. 자야틸레케의 학문은 제자이자 후배 학자들인 데이비드 칼루파하나(David J. Kalupahana), 파드마시리 데 실바(Padmasiri de Silva), 구나팔라 다르마시리(Gun
1.우이 하쿠주(宇井伯壽, 1882~1963)는 근대화의 격랑이 일던 1882년 6월 1일 아이치현(愛知縣) 호이군(宝飯郡) 미토정(御津町) 에서 평범한 농부였던 아버지 우이 젠고(宇井善五)와 어머니 몬(もん)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단카(檀家)로서 사찰과 사회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부친이 6 세에 사망했기에 편모슬하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을 것으로 추측된다.아마도 이 두 가지 이유가 결합해, 당시 막 의무교육화가 이뤄졌 던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초등학교 저학년에 해당)
1. 들어가며필자가 리타 그로스(Rita M. Gross, 1943~2015)를 처음 만난 것 은 2009년 베트남에서 개최된 세계불교여성대회(샤카디타)였다. 당시 세계는 여성 인권을 위한 성주류화 정책이 강화되고, 여성과 지구 환경 등과 관련한 전 지구적 여성연대가 중시되었다. 불교도 이에 영향을 받아, ‘샤카디타’에서는 동아시아 출가 수행녀들의 열 악한 현실 극복과 티베트불교 비구니 승단의 회복을 위하여 전 세 계 불교 여성들이 연대해서 논의가 활발했다. 그런데 상좌부불교 국가에서 볼 때, 한국 비구니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독자
근대불교학의 도입과 대승비불설일본의 대승비불설의 문제는 불교가 아카데미 내에서 근대적인 학문으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불교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으로 문헌적 역사적인 연구가 도입됨에 따른 것이다. 불교에 대한 전통적인 수학은 수행과 신앙을 위한 불교 성전에 관한 훈고학적인 연구였다. 대승불교에 대한 비불설은 에도시대에 최초로 토미나가 나카모토(富永仲基)의 《출정후어(出定後語)》에서 제기되었지만, 당시의 풍조 속에서는 단지 배불논서(排佛論書)로 수용되는 것에 그쳤다. 나카모토는 ‘가상(加上)’이
1. 서구인 최초의 공식 불교 신자이 글은 19세기 후반,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에서 출발하여 불교로 개종한 후, 남아시아에서 불교 연구와 불교 근대화 운동에 헌신한 헨리 스틸 올코트(Henry Steel Olcott, 1832~1907)의 삶과 사상을 ‘종교불학(宗敎佛學, Buddhology of Religions)’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의 생애는 동서문화의 만남과 변화의 경계선에 있던 한 서구 지성인이 자신의 속한 전통의 테두리를 벗어나 보편적인 진리 지평을 향해 걸어 나간 구도자의 모습을
1. 서언인순(印順, 1906~2005) 대사는 20세기 100년을 중국, 홍콩, 대만 등지에 머물면서 불교학 연구, 저술 및 출판, 강의, 후학 양성 등에 매진했다. 대사는 출가 수행자이면서 불교학자이고 동시에 스님과 일반인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일생을 지냈다. 대사가 중국과 대만의 현대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인순 대사는 중국 근대불교를 이끌었던 고승 중의 한 사람인 태허 대사의 인생불교(人生佛敎) 가르침을 바탕으로 인간불교(人間佛敎) 사상을 제시하고, 삶 속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
이병욱 교수가 《인도불교사》(라모트 지음, 호진 스님 역) 서평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국어에 웬만큼 숙달되지 않는 한, 외국 서적을 읽고 어떤 학문적 관점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권의 좋은 책이 번역된다는 것은 우리 학계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호진(浩眞) 스님이 8년여 ‘인고와 보람의 세월’에 걸쳐 번역한 《인도불교사》는 실제로 우리 불교학계의 수준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웬만한 불교학 전공자라면 사실 책이나 논문 몇 가지를 참고하여 웬만한 수준의 인도불교사 관련 서적
1. 근대불교의 영욕 속에서근대 일본불교는 음과 양이 교차한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세워진 신정부에 의한 폐불훼석(廢佛毁釋)으로 불교계는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범교단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재 양성이었다. 불교계는 유럽의 학문 체계를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간다. 고대에 유입된 불교가 중세를 거치면서 일본열도에 토착화를 이뤄갔듯이. 이처럼 일본 불교학이 세계적인 학문의 대열에 들어선 것은 근대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부심 또한 높았지만 오만한 부분도 있었다. 동아시아불교의 중심이 일본임을
1. 들어가며아시아로 전파되어 대표적인 ‘동양 종교’로 여겨지는 불교가 아주 오래전 유럽으로도 전해졌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유럽이 기독교화하면서 불교는 유럽에서 진지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19세기에 들어서서야 불교는 다시 유럽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 불교는 소수였지만 지식인들의 관심사였다. 철학자, 극작가, 문인, 종교인들이 낯선 ‘이방의 종교’를 사뭇 진지한 태도로 바라보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그러나 이후 1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불교는 눈에 띄게 확산되어
흔히 ‘초기불교’ 혹은 ‘남방불교’ ‘상좌부’ 등으로 불리는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전통은 지역적으로는 남아시아 전역에 분포된 불교전통을 지칭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언어는 빨리(Pāli)라 불리는 성전 언어체계이며, 경-율-논을 포함한 삼장(三藏)은 물론 이를 근본 텍스트로 삼은 방대한 주석서와 해석을 담은 논서들도 보유하고 있다. 삼장은 빨리 언어체계로 전승되고 있는 반면, 주석서와 논서들은 빨리뿐만 아니라 지역 언어들로도 제작 · 전승되고 있다. 이 불교전통이 지닌 기본적인 세계관은 삼장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
1. 생애월폴라 라훌라(Walpola Rāhula, 1907~1997)는 1907년 5월 9일 스리랑카 남부, 갈레(Galle) 지역의 월폴라(Walpola)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헷띠고다 가마게 돈 헨드릭 드 실바(Hettigoda Gamage Don Hendrick De Silva)였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을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서 장난쳤다고 체벌을 가하겠다는 선생님과의 의견 차이로 학교를 떠났다. 교장은 체벌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어떤 체벌도 거부해서 그의 학교생활은 끝났다.그 후
에드워드 콘즈의 삶과 저술한국 불교학계는 1980년대에는 주로 일본 학계의 연구성과를 수용하였고, 그와 함께 영어권 연구도 학계에 소개되었다. 일본 학계의 연구성과는 기본적 설명이 충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시적 관점과 자신의 분명한 주장에서 무언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영어권 연구성과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영어권 연구성과에서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인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 1904~1979)의 삶과 학문적 성과를 간단히 검토하고자 한다. 콘즈는 독일 사람이지만, 영국 런던에
깔루빠하나(David J. Kalupahana, 1936~2014) 서구불교학 한계, 도전적으로 비판하다 깔루빠하나(David J. Kalupahana)는 1936년 스리랑카 남부 갈레(Galle) 지역에서 태어났다. 1959년 실론대학교(University of Cylon)에서 문학석사를 받은 후 영국으로 유학하여 1966년 런던대학교(University of London)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의 학위논문은 〈빨리 니까야와 중국 아함경에 구현된 초기불교 인과론의 중점 분석(A Critical Analysis of the
암베드까르(B. R. Ambedkar, 1891~1956)현대 인도불교의 부흥을 이끌다인도를 붓다의 나라이자 불교의 발상지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불교가 현재 인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1년 실시된 인도의 종교인구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도의 불자 인구는 7,955,207명이며 이는 전체 인구 중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7%에 불과한 숫자이다. 불교는 발생지인 인도에서 13세기 초에 거의 사라져버렸는데, 그 이유를 두고 많은 주장이 있다. 인도에서의 불교 멸망에는 여러 가지의
1. 어우양젠(歐陽漸)과 금릉각경처근대 중국불교는 불교라는 시점에서만 이해할 수 없다. 청말 혼란기에 불교는 일종의 대안 사유였고 서구 근대사상과 결합하거나 혹은 충돌하면서 새로운 사상으로 변화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주요한 배경은 불교 지식을 부단히 생산하고 전파한 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집단은 양원후이(楊文會, 1837~1911) 거사가 설립한 금릉각경처(金陸刻經處)와 양원후이의 제자 어우양젠(歐陽漸, 1871~1943)이 설립한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이다. 양원후이는 청 동치(同治) 5년(1866) 10여 명의 동인과 각경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박사는 일본이 배출한 ‘인도철학 불교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동시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라 할 수 있는 비교사상 연구 개척자로서도 명성이 높은 학자이다.나카무라 박사는 1912년 11월 28일, 일본 남부 시마네현 마쓰에시 토노마치에서 출생했다. 마쓰에 지방 관청 관리직 출신의 집안이었다. 나카무라 박사는 출생하자마자 집안 사정으로 인해 도쿄도 분쿄구 동경대학 근처로 이사해 살게 되었는데, 평생토록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더 없이 사랑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같은 평판으로 인해 1989년 ‘동양사상 연구의
역사적 · 사상적 배경중국 근대 시기에 불교가 맡은 역할은 매우 독특하다. 아편전쟁(1840년)과 청일전쟁(1894년)으로 대변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그로 인한 동서 문화의 충돌이라는 상황 앞에서 불교는 서양철학에 대항하는 사상적 무기로서 역할과 동서 문화 교류의 계합점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였다.서양 사상이 새로운 시대사조로 대두하게 되자, 근대 이전의 사회 이데올로기로 강력한 영향력을 지속해온 주자학에 눌리고 있던 불교가 부흥하게 되었다. 주자학은 세계와 인간을 동일한 영역으로 파악하고 동일한 메커니즘인 이(理)의 실현
1. 들어가는 말필자가 인도 유학 시 가장 즐겨 보던 저술은 바로 인도 학자 비말라 추른 로(B.C. Law, 1892~1969)의 저서들이다. 로만큼이나 많은 저서를 낸 인도 출신의 학자는 알지 못한다. 평생을 연구와 집필만 하다가 살다 간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의 저술은 양적으로 많고 또한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그래서 로 박사는 소개하고 싶었던 인도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저술은 주로 인도불교 연구의 토대 학문이자 기초자료라 할 수 있는 인도의 자연, 지리, 인종, 민족, 역사, 언어, 종교, 사회 등과 관련되어 있다
1. 아버지를 흠모하고 그리워한 내성적인 소년어린 시절이란 신비와 비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누가 그 비밀과 신비를 말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이 어린 시절이라는 놀라운 숲을 지나왔고, 그 행복의 경이 속에서 눈을 떠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인생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현실이 우리의 영혼에 밀려들어 왔었다. 그때 우리는 나 자신이 어디 있는지, 또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온 세상은 나의 것이었고, 나는 곧 온 세상이었다. 그때는 처음도 끝도 없는 무한한 삶(infinite life)이었다. 휴식도 고통도 없었다. 마음은